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nd Turtle Aug 05. 2022

붓다 선원에 다녀오다 1

명상 기록 24일째


붓다 선원의 명상 공간인 도솔 선방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다.

계를 지켜 치지 
음식의 적당 알아
한적히 선정을 닦음이
부처님 가르침이라네



2022년 7월 25일부터 7월 28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경남 거창에 있는 붓다 선원에 다녀왔다. 여름휴가 중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아내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한 채 서둘러 집을 나와 다소 먼 길을 운전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붓다 선원으로 갔다 그곳에 그렇게 가고 싶었던 이유는 선원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선원장이신 진경 스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평소 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즐겨 보는 편인데, 이를 통해서 스님이 예삿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명상 수행과 관련하여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지에 대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씀해 주시는 모습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진경 스님과 붓다 선원에 대해서는 아래의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다.


https://cafe.naver.com/buddhaway/2920


붓다 선원은 초기불교에 기반한 사마타 명상 수행을 배울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수행처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명상 프로그램은 간화선을 기본으로 한다. 초기 불교의 명상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주로 미얀마에 있는 명상 센터로 가서 수행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미얀마의 명상 센터는 한국인들도 넘쳐 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붓다 선원 같은 곳이 생겨남으로 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미얀마까지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수행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거창 IC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운전하니 ‘붓다 선원’이라고 쓰인 표지가 있는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이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더 올라가니,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붓다 선원이 눈에 들어왔다. 선원에 도착해서 어디로 갈지 몰라 일단 종무소라고 쓰인 곳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스님 한 분이 수행과 생활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는데 죄송하게도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수행 시간표를 잘 챙겨야 수행에 빠지지 않고 제 때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는 1인 1실이었는데 매우 마음에 들었다. 숙소는 방사 또는 꾸띠(수행자를 위한 작은 집이라는 빠알리어)라고 하는데, 2-3평 정도의 샤워실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이 방을 사용하시던 분이 매우 깨끗하게 청소를 해 두었다. 나도 돌아갈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식사는 아침, 점심 두 끼만 먹고 오후는 불식이다. 오후 12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나는 붓다 선원에서 수행하는 동안 정식 공양(절에서 식사를 의미하는 말)은 하지 않고 미숫가루로 허기만 달래기로 했다. 배가 부르면 수행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식을 통해 뱃살을 좀 빼고 몸의 균형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도 4일 후에는 마음뿐만이 아니고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붓다 선원에서는 묵언 수행이 기본이다.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필요한 용무가 있으면 메모를 이용할 수 있다. 휴대폰을 맡기는 것은 기본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산만해지고 숨 보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다. 이뿐만 아니라 절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수행방법과 수행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행자들끼리 수행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식의 정보가 많이 오고 가고, 이것은 수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이는 불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수행기간 중에는 일체의 대화를 삼가야 한다. 마을에서 하는 통성명이나 인사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조용히 와서 조용하게 명상하고 조용히 떠나면 된다. 크게 떠들 일이 없다. 그게 절이다.


꾸띠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자율 수행에 참여하기 위해 도솔 선방으로 갔다. 도솔 선방의 내부는 심플하면서도 매우 세련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예불을 드리는 법당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나의 자리는 미리 정해져 있었고 방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스님들과 일반 수행자들의 자리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앉아 있는 힘이 약해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일반 수행자들은 출입문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선방 중앙에 모셔져 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이 푸근한 인상의 돌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다리를 꼬고 허리를 곧추 세워 앉았다. 숨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붓다 선원에서의 나의 짧은 수행 여정이 시작되었다. 1일 차 수행 일과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일 차)
-10:30~12:00 명상(1시간 30분)
-휴식
-13:00~14:00 명상(1시간)
-14:00~14:30 걷기 명상(경행)
-14:30~15:30 명상(1시간)
-15:30~16:00 걷기 명상(경행)
-16:00~17:00 명상(1시간)
-17:00~17:30 걷기 명상(경행)
-휴식
-18:30~18:50 저녁 예불
-18:50~19:50 명상(1시간)
-저녁예불을 마치고 7:50까지 명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커피와 미숫가루로 허기를 달랬다
-10:05 잠자리에 들다.
-총 명상 시간: 5시간 30분

붓다 선원의 수행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지만 지극히 차분하고 평화로웠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꾸띠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꾸띠에 머물면서 쉬거나 아니면 선방으로 가서 좌선 sitting meditation을 할 수 있었다. 수행 일정에 따라 수행자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시작하고 마치면 된다. 간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좌선은 1시간 단위로 하고, 1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일어나서 선방 주변을 천천히 걷는 경행(걷기 명상)을 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면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스님이나 선생님이 없다. 참가자들은 진경 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미리 보고 수행방법을 숙지하고 오도록 안내를 받는다. 그리고 선원에서는 그에 따라 수행을 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인터뷰 시간에 진경 스님께 질문을 하면 된다. 모든 수행자들이 묵언 수행을 하며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잘했기 때문에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또한 식사를 하거나 걷는 중에도 숨을 보는 명상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바쁘게 걷거나 뛰어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붓다 선원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수행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였다.


하루 종일 명상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정에 필요한 집중력을 개발하기가 어렵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명상을 하다 보면, 이게 명상을 하는 건지, 아니면 통증을 견디는 인내력 시험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시점이 온다. 마음은, 얼굴 전면에서 일어나는 숨과 다리에서 일어나는 아픔 사이를 매우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진경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아픔을 무시하고 숨에 집중할 수 있어야 수행의 진전이 있다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야 호흡에만 집중하는 제대로 된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방 저쪽 한편에서 세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스님들의 근기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평생 수행의 결과인 것이다. 저절로 우러러 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첫날은 1시간 정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30분이나 1시간 정도 걷기 명상을 하다 보면 다리가 좀 풀리고 다시 1시간 정도를 조금 꼼지락거리면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틀 째에는 다리 근육이 뭉치고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30분 이상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는데, 두세 번씩 자세를 고쳐 앉아야만 했다.


첫날은 마을에 두고 온 일들로 인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망상들을 가라 앉히는 정도로 가벼운 명상을 했다. 눈만 감으면 얼굴들이 떠 오르고 그 얼굴들과 함께 한 일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지나갔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고 마음은 이미 처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여기 이 먼 곳까지 와서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니?’라는 자각이 일어나서, 다시 숨 보기에 집중하는, 망상과 집중의 순환이 종일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망상들이 조금씩 가라 앉혀지고 얼굴 전면에서 일어나는 숨의 움직임에 마음이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저녁 8시쯤에 명상을 마치고 꾸띠로 돌아왔다. 9시 30분까지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그냥 쉬기로 했다. 시끄럽고 복잡한 마을을 떠나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한적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게 살고, 적당히 먹고, 조용히 명상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