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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Aug 14. 2020

당근 마켓 속 별별 사람

랜덤한 인간관계: 같은 세상 속 우리들은 이렇게나 다릅니다.



꽃을 사러 꽃시장에 갔는데 알람 소리가 울린다.


"당근~ 당근~"


내 핸드폰인가 해서 확인했는데 상점 주인분의 것이어서 눈이 마주치고는 씨익 웃었다. 이렇게 최근 들어 당근 마켓을 하는 분들을 종종 목격한다. 코로나로 인해 동네 기반의 당근 마켓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당근 마켓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작은 동네에서조차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랄까.


판매했던 이력. 내용은 조금 지웠어요.


1. 당근 마켓 속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따뜻함


당근 마켓은 하나의 온라인 플리마켓이다. 그동안 잘 사용하던 물건이 또 다른 주인을 만나서 물건의 수명이 늘어나고, 서랍장에 박혀있던 충동구매한 물건들은 제 주인을 찾아가 쓰임을 다한다.


이사를 오면서 깨끗하지만 오래된 소파를 버리기가 아까워 당근 마켓에서 나눔을 했다. 가져가신 분 께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셔서 되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버리기엔 아깝고 누군가 가져가서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한 마음 중에는 큰 가구를 처분하는 데에도 돈이 들었고 딱지를 사다가 붙여야 하는 노력도 필요했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뵙지는 않았어도 따뜻한 메시지에 기분이 좋았고 더불어 그 집의 행운을 빌게 되었다. 그 소파와 함께 우리 집에도 좋은 일이 많았어요~ 좋은 일 가득하세요~!


친구의 경우에는 집에 동치미 김치가 너무 많아서 나눠드린다는 글을 올렸더니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할아버지께서 스쿠터를 타고 오셔서 잘 받아가셨다고 했다. 동네 이웃의 정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웃음이 나는 이야기이다.



동네에 마실 나갈 겸 쓰지 않는 물건으로 커피 한 잔 값을 번다는 것이 소소한 재미이기도 하고, 어떤 분이 이 물건을 사러 오실지 궁금하고 매치해보는 재미도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당근 마켓의 컨셉은 동네의 정을 나누는 것이다. 최대한 구매자는 판매자 쪽으로 찾아가서 구매를 하고, 앱을 설치하면 서로 매너 있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기본적으로 약속하게 된다. 이렇게 원래 기획의도처럼 좋은 점만 있으면 좋겠지만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익명으로 활동을 하게 되니 종종 갈등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2. 우리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해야 할까요?


아무리 매너 평가를 하는 시스템이 있다 할 지라도 기본적으로 이 앱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지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인데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까.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감과 허탈함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기대를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약속을 잡아두고 오지 않는 경우는 꽤나 흔한 일이고, 이미 약속 장소로 출발을 했는데 계정이 사라져 버리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심지어 같은 주거 단지였는데!??)


예의를 차려서 순서대로 판매 예약을 받고 있더라도 '지금 바로 갈게요'하면서 새치기를 요구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저렴한 가격에 득템을 한 것임에도 '매트까지 주지 않으면 안 살래요’, 혹은 ‘여러 개 사니까 더 깎아주세요’(이삼천 원짜리 물건들을 구매하신)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당근 마켓에서 소위 말해 진상들을 만난 리뷰는 무궁무진하다.



매너 평가 항목



한 번은 유화 물감이 저렴하게 올라왔다. 유화 그림에 관심이 있던 나는 바로 연락을 했지만 2번째로 연락해 거래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뒤 판매자 분께서 다시 연락을 하셨다. 거래자 분이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요구한다고 (냄새가 난다고 했다. 유화물감에서는 원래 냄새가 난다.) 혹시나 무료로 쓰고 싶다면 가서 받아와서 사용하시라고 하셨다.


굉장히 독특하게도 판매자도 구매자도 아닌 애매한 중간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전에 물감을 사가신 분께 연락을 드렸는데 배려가 아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셔서 나도 더 이상 감정 소모를 하기가 싫었고, 그냥 판매자분께 마음만 받겠다고 응답했다.


거래 처음부터 매너가 좀 없으셨나 보다. 판매자분께서는 갑자기 억울하고 화난다는 심정으로 내게 불만을 토로하셨다. 어쩌다 보니 거래를 하지도 않은 두 명이 채팅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두 분이서 중간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신 것 같았는데, 또 내게는 된다고 했던 시간이 안된다고 거짓말을 해 결국에는 물건은 가지고 돈도 환불받으려는 심보가 보이기도 했다.


 '잘 해결되시길 바랄게요.'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쓰면서도 남의 일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동안 잘 사용했지만 당근 마켓을 떠날 때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적다면 적을 수 있는 몇 천 원 때문에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이 사람을 언제 보겠어’ 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해’ 마인드가 강한 걸까?


하지만 그분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당근 마켓이 동네 기반의 장터라는 것! 얼마든지 마트에서나 길거리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고, 심지어 알고 보니 가까운 사이여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사하면서 당근 마켓을 아주 잘 사용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마음이 컸다. 중고나라가 사기의 온상이 된 것처럼(스무 살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그 후로는 절대 구매를 하지 않았다.) 당근 마켓만큼은 우리 동네 플리 마켓으로 잘 남아주면 좋겠는데...


오랫동안 사랑받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 운영 시스템에 규칙을 몇 가지 더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많이 경험했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예로 들면, 요즘 세상에 '시간'은 돈으로도 가치 책정이 될 수 있다.


약속 시간을 잡은 후에는 마켓에서 중간 입장으로 보증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일부 금액을 판매자에게 제공하고 나머지 금액을 구매자에게 환불해준다거나 하는 페널티가 강화되면 어떨까.


당분간은 살짝 지친 멘탈을 회복하기 위해 당근 마켓을 떠나려고 한다. 일단은 모든 물건을 다 끌어안고 맥시멀리스트로 살테다! 다시 기분 좋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제든지 돌아갈테니 당근 마켓 화이팅! 좋은 소문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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