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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26. 2023

치앙마이, 여자는 안 돼요

태국여행 ② 불교의 여성관과 변화의 물결


밥을 먹던 와중 친구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한다.


“야! 태국에 어떤 사원이 있는데 거기에 여자가 출입이 안 된데, 근데 이유가 뭔지 아나? 여자는 생리를 해서 불결해서라고 하는데 미친 거 아니가?”


정확한 정보인가 싶어 되물었다.


“어딘데 거기가, 사원전체가 안 되는 거가 사원 안의 한 구역만 안 되는 거가? 여기 불교 지침인가?”



정확한 내용을 찾아야 했다. 블로거에 적힌 짧은 내용으로 친구는 태국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잘 놀고 잘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태국은 여성차별이 심각해’ 라고부터 생각할 수도 있으니 정확히 알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근거가 필요하다. 마치 기억재배단지에서 일하는 농부마냥 친구의 여행기억에 좋은 비료를 주기 위해 불교의 국가에서 여성들의 신장은 얼마나 되는지, 여성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은 어떤 곳이 있고 왜 못 들어가게 하는지 불법에 나와있는지, 내가 가진 기억까지도 더듬어가며 찾기를 시작한다.


처음 태국에 왔던 때였다. 우리 가족과 다른 몇몇 가족들이 탄 단체버스는 방콕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파타야를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5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남자 가이드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태국은 남자 말고 여자들이 다 일합니다~ 여자들이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요. 여성의 파워가 세고, 모계사회에 ~여권이 “

시간이 지나도 이때의 내용은 머리 한 구석에 콕 박혀, 나에게 태국이란 만화에 나오는 구름 뒤로 가려진 이야기가 시작되는 화면처럼 가이드의 이야기 구름 뒤 여성의 힘이 막강한 나라를 떠올린다.


한국태국학회에서 발행한 『태국의 이해』에서 오늘날의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슬람과 더불어 동남아 이해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은 불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불교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에 퍼져있는 상좌불교를 일컫는다. 나는 학창 시절 배운 소승불교라는 표현이 더욱 친숙하다. 불교의 종파로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우리가 익히 들어보았을 교종, 선종 등은 대승불교의 한 갈래이다. 한국불교는 여러 종파 가운데서도 대승불교의 선종 전통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국에서 만난 불교는 과거엔 소승불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우리는 더 많은 중생을 구제하는 큰 수레다, 너희는 개인의 해탈만 중시하니 작은 수레다,라는 말 그대로의 대와 소의 측면에서 비난이 일어 1950년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는 소승불교라는 말은 어느 불교 종파에 대해서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올바른 명칭은 상좌불교 또는 테라와다(팔리어) 불교이다.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처럼 ‘대왕’이라 칭송되는 전 인도대륙을 통일한 아소카대왕에 의해 스리랑카를 필두(BC.3C 실론)로 불교는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을 망라하여 범아시아적 종교로 부상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동남아시아에 상좌불교가 들어온 것은 5C경, 심지어 11C에서 14C 사이에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국교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소카대왕 사후,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는 분할통치로 차츰 붕괴된 서로마처럼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고 이후 북인도 지역에서 쿠샨 왕조가 들어섰는데 이 나라의 카니슈카 왕도 불경을 편찬하면서 불교를 권장했다. 이때의 불교가 중생의 구제를 지향하는 대승불교다. 이 대승불교는 북방 경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로 전파되었다. 중국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였기에 중국인들에 의해 번역된 한어 불교경전을 접했다. 혹자는 페르시아 문명과 충돌하며 북방으로 전파된 인교불교는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재충돌, 이 페르시아-중국적 대승불교가 한국의 문화와 3차 충돌에 의해 한국불교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에 비교적 남방으로 전해진 인도의 원형불교전통이 살아있는 남방불교, 즉 상좌불교가 현재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남아시아에 상당수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불교의 시작점인 인도에서는 어떨까. 많은 왕들에게 사랑을 받던 불교가 널리 널리 퍼지는 반면 4세기 초부터 인도 본국에서는 약화되기 시작한다. 쿠샨왕조 다음으로 북부 인도를 통일한 굽타왕조 때에는 힌두교가 오히려 불교보다 더욱 성행하여 널리 확산되어 갔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도의 종교비율로는 힌두교가 80%, 이슬람교 14% 정도이다. 불교는 1%도 되지 않는다. 불교의 발생지에서 불교가 뿌리 채 뽑혀버린 이유는 이슬람에 의한 파괴, 힌두교로 흡수 등에서 간략히도 찾을 수 있겠으나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라는 책은 이에 대한 좋은 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더운 나라의 어린 스님들의 수행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스님들의 복장으로 인해 더욱 잊혀지지 않는 기억인 듯하다. 주황색의 도포를 대각선으로 만들어 매어 몸을 감싸고 맨발로 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런 TV속에서만 보아왔던 스님들을 태국에 와서 만났다. 잊고 있었던 저 편의 기억, 한국사를 공부하며 외웠던 불교의 전파 부분에서 봤던 지도가 떠올라 확연히 우리나라와는 다른 불교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줄은 짐작이 간다. 사원 내부 여자가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상좌불교의 특징일까.


불교학자 이창숙 선생은 “불교의 여성관은 불교 사상의 전개, 그리고 그 전개의 배경인 교단 및 그 교단이 속해 있던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며 변천해 왔다.”라고 한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은 보살사상과 여래장사상이다. 대승불교의 주체자는 보살이며 누구라도 보리심을 일으키면 보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부파불교(상좌불교)에서는 여자에게는 오장이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제석천과 범천과 마왕과 전륜성왕과)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요점은 여자의 성품이 천박하고 수행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불설초일명삼매경). 또한 여성을 비하하는 인도인의 관념이 너무 뿌리 깊은 것이었으며 이러한 특정 시대의 사상관과 당시 여성의 지위가 맞물려 생겨난 제한들이 여럿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좌불교를 채택하는 모든 나라의 사원은 여성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가. 그것도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과 체제, 문화와 관습이 다르므로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허용되는 범위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태국 여성은 본래 자급자족적인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강한 역할을 갖고 있었으나 20세기 중엽 이후 산업화의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약화되었다. 그렇다면 산업화 이전의 태국여성이 남성에 대해 열등한 위치에 있도록 만든 제도적 바탕은 무엇보다 불교와 왕권 및 관료사회의 구조라 할 수 있다. 13세기 수코타이 왕조 이래 국교로 채택되어 태국의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간을 형성해 온 상좌불교는 남자 중심의 엘리트 종교였다. 상좌불교 불경의 하나인 소송경의 보경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봉사하는 존재이며 이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 다시 말하면 상좌불교는 남자를 여자보다 영적으로 높은 존재로 간주한다.


태국에는 우리나라에는 쉽게 볼 수 있는 비구니스님을 볼 수 없다. 태국에서 불교가 여성을 남성에 비해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가장 두드러진 측면으로 여자들의 비구니 수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불교의 율장에 따르면 여자가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 양쪽으로부터 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태국에는 비구니 승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태국에서 여자가 계를 받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로 되어 있다. 태국에서 여자가 출가를 하려면 타이어로 치 혹은 매치라고 불리는 여승으로만 절에서 생활할 수 있다. 금욕 외에도 8계를 지켜야 하는 매치는 대부분 밥 짓고 빨래하고 바느질하는 등 비구들의 식모처럼 살고 있다. 또한 매치는 행정적으로도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다. 예컨대 태국의 교통통신부는 매치들을 일반 속인으로 간주하여 그들에게는 비구에게 주는 대중교통 무임승차권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내무부는 그들을 종교인으로 간주하여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자들이 비구니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여자들로 하여금 타이인들이 중시하는 공덕지향적 불교의 구조에서도 남자들에 비해서 불리한 위치에 있도록 한다. 태국인의 삶을 지탱하는 불교관이 상좌불교의 교리와 근대사회로의 이행에서 어쩔 수 없는 여러 부분으로 인하여 여성의 열등이 굳어져온 것이라면 그때 그 가이드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불교민속연구소장 구미래 스님의 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여성의 지위에 대한 역사적으로 이어진 인식에 비해서, "오늘날 태국의 여성들은 명석하고 강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은 남성의 배 이상이고 성적 또한 압도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사회제도가 인격은 물론 인간의 능력까지 통제하고 좌우해 왔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는 남녀차별을 둘러싼 관습과 규범에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여성을 종속적 위치에 두는 남성중심사회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실상 조선과 아유타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다. 근대화와 함께 법률은 바뀌었지만 심각한 여성 불평등의 인식과 관습은 깊이 뿌리를 내려왔다. 그런가 하면 가정 내에서는 모계의 전통이 뚜렷하다. 혼인을 하면 남성은 처가에 들어와 살고 아버지의 권위는 아들이 아니라 집에 들어와 사는 사위에게 넘어간다. 공적인 우두머리이자 집안의 대표성은 남성이 가지게 되지만 실질적 연결고리는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조상신은 부계가 아니라 어머니 쪽의 조상을 모시면서 가신신앙의 주체는 어머니에게서 딸로 계승된다.

15세기 명나라의 관리가 태국을 방문하고 적은 글에 다름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국왕이 형벌을 내리려 하거나 평민이 장사를 하거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부인에 의해 결정된다. 여성의 재능과 견식이 남성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실질적 결정권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각자 지닌 특성을 조화롭게 운영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태국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 불평등의 근원을 ‘상좌불교’와 ‘국가체제’에서 찾는다.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교가 생활전반에 성차별을 고착시키고 여성의 지위를 가정이란 울타리에 가두는 이념적 수단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화된 학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서민들의 교육은 사원에서 스님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때의 교육기회는 남자들에게만 주어졌다. 국가체제 또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절대군주제로 운영되었기에 여성들 스스로 이를 성차별로 여기기보다 전생의 공덕이 부족한 탓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라 받아들인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은 서서히 일고 있다. 태국에서 여성들은 단기출가조차 할 수 없지만 수년 전부터 많은 여성들이 송크란 축제 때 삭발을 하고 탁발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또 송담마카야니 사원에서는 비구니스님들이 비구 스님들만 입을 수 있는 붉은 가사를 갖춘 채 예불을 하고 지역주민들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승단에서도 사회에서도 ‘스님은 남성만 될 수 있다’는 편견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사부대중이 함께 태국불교를 굳건히 이끌어나갈 그날을 기대해 본다.">

-구미래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기준도, 세상 모든 이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에도 남녀 그 어느 것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아직도 세상 많은 곳의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 여성이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 있다. 인도여행을 가서는 얼굴이 하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선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가 맞닥뜨렸을 때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 그 너머엔 수 천년의 관습과 문화와 삶이 녹아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으며, 왜 이렇게 행해져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불합리하다는 목소릴 당당히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1996년 한국불교의 도움으로 세계 대각회의 주관으로 인도 녹야원에서 11명의 스리랑카 여성들이 비구니 계맥의 상좌부 국가에 비구니 승단이 재건됨과 동시에 스리랑카에서 태국으로도 전수되어 현재 수십 명의 정식 비구니 승단이 출범했다고 한다. (2017, CRS뉴스 이치란 객원논설위원-현대세계불교)



태국 여행에서 “men only”의 안내판을 마주쳤다면 얼굴을 찌푸리기 전 눈을 돌려 그 나라를 그저 바른 눈으로 바라보길 원한다.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그러고 나서 그들의 현재 행보는 어떤지 접한 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더해본다면 더 깊은 여행에서의 배움으로 다가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처음 여행길에 올랐을 때에 친구에게 무턱대고 태국은 여자의 파워가 세다고 가이드한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고 친구는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어디에서처럼 결국 여성 불평등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지만,

네가 좋아하는 비교적 여성의 위치가 높았던 고려시대처럼 태국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고,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불교의 교리로 지금은 여성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지만 여성 승려가 허락되지 않는 태국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이보다 어쩌면 더한 차별을 받는 전 세계 힌두교도 여성들은 지금도 엄청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부처는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밤,

야경을 보러 갔던 치앙마이 올드시티 안의 왓 판따오 사원 안 부처님은 왠지 친구와 나를 향해 지긋한 미소를 보내는 것 같다.

















참고, 인용


단행본

『태국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한국태국학회, 2008


기사

2008, 불교평론, ‘동남아 상좌불교의 역사와 현황’, 마성

2009, 부산일보, ‘조흥국교수의 동남아 들여다보기- 4 상좌불교의 세계’, 조흥국

2012, 불교평론, ‘열린 논단-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가’, 이창숙

2012, 현대불교, ‘泰 단기출가 비구니…송크란 축제 탁발 나서‘, 오종욱

2014, 불교신문, ‘여성과 불교’ 구미래

2017, CRS뉴스, ‘현대세계불교 14 태국불교와 한국불교의 만남’, 이치란

2018, 불교신문, ‘상좌부불교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허정철

2022, 아틀라스뉴스, ‘태국역사 1 타이족의 민족대이동’, 김현민

2023, CRS뉴스,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2 한국불교와 전법륜’, 이치란


논문

2006, 조흥국, 「태국 여성의 지위와 역할의 변화」-국제지역연구 제9권 제4호

2010, 이동윤, 「제3의 성으로서 태국의 까터이」-한국태국학회논총 16-2호

2011, 서경교, 「태국 여성지위의 이중성 : 불평등의 현실과 미래의 평등?」- 한국태국학회논총 17-2호



사이트

태국정부관광청 http://www.visitthaila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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