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봐도 괜찮다”라고 격려하는 뉴질랜드 동요들.
아이들은 놀기 천재들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으로든 놀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수레를 발견한 티아와 로이는 그 옆에 있던 막대기를 들고 올라타 배를 타는 시늉을 했다. 막대기로 노를 저으며 “Row, Row, Row Your Boat(노를 저어라)”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면 그릇을 들고 처마 밑에 서서 빗물을 받으며 놀았고, 허허벌판에서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새집을 만들며 놀았다. 로버트 풀검이 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책 16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이란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은 삶 속에서 관찰을 통해 모방하고, 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지혜와 용기를 배워간다. 나는 모래성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속에도 삶의 정수가 들어있다고 믿는다. 각 나라마다 부르는 동요가 다른데, 그 노랫말 속에 저마다의 문화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담겨있는 듯하다. 뉴질랜드에서 부르는 동요는 영미권에서 주로 부르는 노래와 비슷하지만, 로이가 즐겨 부르고 있고 유치원에서 자주 듣는 노래들을 보면 비슷한 교육 철학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볍게 듣는 노랫말 속에도 뉴질랜드 사회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세 가지 동요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로 자주 부르는 동요는 ‘아주 작은 거미(Incy Wincy spider)’라는 노래다. ‘조그만 거미가 수도관을 타고 올라갔네. 소나기가 쏟아져서 거미를 휩쓸어 버렸네. 해님이 반짝 나와 물기를 말렸네. 조그만 거미는 다시 수도관을 타고 올라갔네.’ 동요에서 노래하는 조그만 거미는 바로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 아이들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본능이 있는 마냥 테이블, 의자 위부터, 책과 쿠션들을 쌓아 올리며 기어이 그 위를 올라간다. 놀이터에서도 정글짐 꼭대기, 암벽을 타고 미끄럼틀 제일 위까지 올라간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넘어지고 망설이고 무서워서 울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해님처럼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따뜻하게 안아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또다시 시도하고, 해냈다고 즐거워한다. 뉴질랜드 엄마들이 “조심해! 하지 마!”라고 하는 걸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조금만 위험해 보여도 “조심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래선지 로이가 “이거 해도 돼?”라고 물어보는 걸 보면서 너무 제약을 두었나 반성하기도 했다. 어떠한 목표나 방식을 정해두지 않고, 그냥 “한 번 해봐. 해봐도 돼.”(Have a go, Try again!)”라고 격려하는 말이 아이들의 타고난 모험심을 지켜주는 것 같다. 로이가 3살 까지는 낮잠을 잤는데 녹초가 되어 기절한 듯이 자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쌔근쌔근 때론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며 자는 모습을 보며 이토록 노는데 진심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어른이 보기엔 별 것 아닌 수도관을 타고 올라가고 떨어지고 다시 기어 올라가는 놀이일지라도 아이가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그냥 해보는 모험심을 잃지 않기를 노래하게 된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험티덤티(Humpty Dumpty)라는 영국 전래동요다. ‘험티 덤티가 담장 위에 앉아 있다가 크게 떨어졌어요. 왕의 말과 병사들이 모두 모여도 다시 원래대로 만들 수 없었대요.’ 험티 덤티는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캐릭터인데, 알이 의인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노랫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깨어질 수 있는 존재임에도 높은 담장 위에 앉아있다가 결국 깨지고 만다. 어떠한 극적인 결말이나 판단이나 감정이 노래에 담겨 있지는 않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아이의 실수를 허용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시 붙일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가 훤히 보일지라도 아이가 하게 내버려 둔다. “깨질 수 있어. 부서질 수 있어.”라고 경고는 하지만, 위험한 상황만 아니라면 아이가 하려는 걸 막지는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몸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행동에 결과가 따라온다는 걸 인지할 수 있도록 아이가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페인트를 다 쏟아도, 병에 물을 넣으려고 하다가 다 흘려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환경적인 이유가 크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주로 실내 생활을 하고 유치원도 실내 활동이 주라서, 만들기, 전기 회로 놀이, 레고 조립과 같이 가만히 앉아서 손을 움직이는 놀이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뉴질랜드는 대부분의 집에 정원(Back garden)이 있고, 유치원에도 모래 놀이터와 정원이 있어서 야외 활동을 많이 한다. 물놀이, 모래놀이, 장애물 코스 건너기와 같이 온몸을 쓰는 놀이를 많이 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래를 뒤집어쓰고 와도 ‘오늘 신나게 놀았구나!’하고 웃고 만다. 뭘 흘리고 묻히고 떨어뜨려도 자연 속에서 빗물이 깨끗이 청소해 줄 테니(내가 뒷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별로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를 야단치지 않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은 환경에서부터 오는 것 같다고 느낀다.
세 번째로 인사이트를 준 노래는 ‘노를 저어라(Row, Row, Row Your Boat)라는 동요다. ‘노를 저어라, 배를 저어라, 개울을 따라 부드럽게. 즐겁게, 즐겁게, 인생은 그저 꿈과 같아.’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 ‘인생은 그저 꿈과 같아.(Life is but a dream)’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노를 젓는 행위가 경쟁이나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들뜬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배를 타는 장소부터가 거친 바다라든지 아마존강과 같이 기나긴 강이 아니라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개울정도다. 빠져도 무섭지 않고, 바닥에 발이 닿기도 하는 시냇물, 그러니 배 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너무 막막하거나 어렵지 않은 환경 속에서 서서히 인생을 배워간다. 조금씩, 매일, 즐겁게. 이것은 뉴질랜드 사회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속도와도 닮아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배를 타고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노를 젓는다. 도달해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레이스를 지켜보며 지지할 뿐이다. 한국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이유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직업에 따라 연봉이 정해져 있고 어떤 직업은 생계를 잇기도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직업을 가지든 생활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전문직이든 기술직이든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연봉이 높아질 수 있고, 최저시급도 한국의 2배다.(2026년 기준 한국은 시간당 10,320원(약 $7.12 USD)인데 반해 뉴질랜드는 23.95 NZD(약 $14.31 USD)이다.) 물론 생활비 전반을 고려해야 하고 최저시급만으로 사회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뉴질랜드가 직업을 전환하고 새로운 직군을 시작할 때에 진입장벽이 낮은 것만은 분명하다. 뉴질랜드 교육평가국(Education Review Office, ERO)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입 교사의 10%가 45세 이상이고, 총 29%가 35세 이후에 교사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두 번째 경력으로 교직을 선택한 교사의 비율도 17%로 OECD 평균 8%보다 높았다.(OECD가 발표한 2024년 국제 교육 조사 보고서 참고)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탐색하며 배워갈 수 있도록 존중해 주는 것,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판단이나 개입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뉴질랜드에서 들은 동요들은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해봐도 괜찮다”라고 격려하는 듯하다. 거미처럼 미끄러지고, 계란처럼 깨져보기도 하고, 배를 타고 헤엄치면서 세상을 탐험해 보라고 말이다. 2013년에 개봉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영화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을 보고, 다가가기 위험한 것들에 다가가며, 벽 너머를 들여다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서로를 찾고,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이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아이들의 타고난 모험심과 호기심과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인 듯하다. 결과보다는 탐구를, 완성보다 과정을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노래에서부터 찬찬히 연습해 보는 게 좋겠다.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위 에세이는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에 배달되는 뉴스레터 <다정한 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7년 차 뉴질랜드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았지 삶을 잘 살아낼 줄은 몰랐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려 애쓰며 기록하는 에세이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무료 구독 신청을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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