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크리스마스

그린치, 스크루지 그리고 성경.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들.

by 장혜영
2025_다정한시선_8.png 일러스트 guka


“리본도, 상표도, 선물이 없어도, 상자나 가방이 없어도 와버렸잖아.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상점에서 오는 게 아닐지 몰라. 크리스마스는… 어쩌면…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걸지도 몰라.”

“It came without ribbons! It came without tags! It came without packages, boxes, or bags! Maybe Christmas doesn’t come from a store. Maybe Christmas… perhaps… means a little bit more.”


동화 작가 닥터 수스(Dr. Seuss)의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 책에서 그린치가 읊조리는 말이다. 외딴 산에 홀로 떨어져 살던 그린치는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를 증오하는 캐릭터였는데, 여느 때처럼 분주하게 트리를 꾸미고 선물을 포장하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들의 크리스마스를 망칠 계획을 짠다. 자신이 산타로 분장을 하고 마을로 내려가 모든 선물과 트리, 장식들을 훔쳐오는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훔치는 데 성공한 그린치는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길 기다렸는데,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서로의 손을 잡고 기쁘게 캐럴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돌이키게 된다. 화려한 장식이나 선물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고 나누려는 마음, 함께 하려는 마음이 진짜 크리스마스의 모습이라는 것. 이후 그린치의 작은 심장은 세 배로 커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린치처럼 나 역시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DSC00518.JPG 미국 동화 작가 닥터 수스가 만든 책들. 그중에서도 그린치는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화려한 조명과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은 분위기, 선물과 산타에 대한 이미지로 크리스마스를 체감했다면 뉴질랜드에서는 유독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캐릭터들이 눈에 띄고 다양한 이야기들로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된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 더욱 그런 듯한데, 책으로 만나는 크리스마스가 참 새롭다. 크리스마스 디데이를 세며 하루 하나씩 뜯어보는 크리스마스 캘린더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달력에는 12월 1일부터 25일까지의 날짜가 적혀있고 그 안에 작은 책이나 초콜릿, 레고와 같은 선물이 들어있는데, 아이들은 매일 하나씩 뜯어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올해 로이에게 처음으로 날짜마다 얇은 책이 들어있는 크리스마스 캘린더를 사주었는데,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맥도날드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그린치 캐릭터로 매장을 꾸미고, 해피밀 선물도 그린치에 나오는 캐릭터들로 만든 트리 장식을 주었다. 그린치를 모르던 내가 찾아보고 읽어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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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에 맥도날드에서 받은 그린치 캐릭터로 만든 굿즈 / 산타 역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릭터! 박물관에 가니 산타의 방을 만들어서 이야기처럼 꾸며 놓았다.

교회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여는데, 오클랜드의 라이프 교회(Life Church)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책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을 각색해 만든 뮤지컬 ‘스크루지’를 공연했다. 단돈 35불에 우리 가족 셋이 뮤지컬을 관람할 정도로 저렴했다. 그리고 이스트게이트 교회(eastgate church)에서는 걸어가면서 각각 다른 무대를 만나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단막극들을 관람하는 ‘Christmas Walkthrough’라는 행사를 무료로 개최했다. 이 연극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The Best Christmas Present in the World)’이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무대는 세계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해 참호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책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밤 독일군 진영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고, 영군군도 영어 캐럴로 화답한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오늘만은 총을 들지 말자’는 암묵적인 동의 아래 양쪽의 병사들은 초콜릿, 담배, 단추와 같은 작은 선물을 서로 교환하고,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대화를 나누고, 축구를 하며 미소 지었다. 이 이야기는 1914년에 일어난 크리스마스 휴전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했는데, 상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길 바랐지만 병사 개개인들의 선택으로 자발적인 휴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일 너희가 총을 쏘지 않으면 우리도 총을 쏘지 않을게.(Tomorrow, you no shoot; we no shoot.)”라는 구호를 서로 외쳤고, 작은 나무에 초를 달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으며 단 하루 평화로운 날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라는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구나 싶으면서도 크리스마스가 서구 사람들에겐 서로를 용서하고 화합하는 평화의 정신으로 각인되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DSC00532.JPG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 이야기로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되는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신뢰받을만한 강력한 외형이 아닌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날 때부터 경배받을 수 있는 궁전이 아닌 마구간 구유라는 가장 낮은 장소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셨고 평생 약자와 함께한 생애였다. 크리스마스 정신의 팔 할은 약한 자를 사랑하셨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님의 삶에서 왔을 것이다. 베티 할머니는 작고 오래된 책 하나를 내게 보여주셨는데, 1940년 자신이 6살이던 해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목자와 그의 양(The shepherd and his sheep)’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성경에 나오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어린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책을 꺼내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읽어주었고, 그들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주었다. 할머니는 나에게도 이 책은 자신의 보물이라며 펼쳐 보여 주었고, 로이에게도 책 선물을 주었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키고 싶은 정신, 전해주고 싶은 문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세 유령을 만나면서 개과천선한 스크루지 영감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마음에 품고, 그 정신을 일 년 내내 지켜나갈 것입니다.(I will honour Christmas in my heart, and try to keep it all the year.)” 그린치의 대사처럼 정말이지 크리스마스는 물질적인 것을 넘어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book.jpg 베티 할머니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1940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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