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는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제일 먼저 오프샵을 찾아간다. 오프샵(OP shop)은 ‘기회’를 뜻하는 ‘Opportunity’의 약자로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기부받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판매 수익금으로 자선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 굿윌스토어처럼 기부받은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자원을 재사용, 재순환하는 중고 물품 판매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뉴질랜드에서는 오프샵이 없는 동네가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잡화점 하나 없는 깡시골에도 오프샵은 있다. 헌틀리에 처음 왔을 때 매일 심심할 때마다 드나들던 곳이 세인트존 오프샵(St John Opportunity Shop)이었다. 오프샵은 헌틀리 시내(읍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정 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백화점이나 가구점, 옷 가게,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잡화점 하나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옷, 신발, 가방에서부터 식기류, 아기용품, 침대, 책상 같은 가구류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모여있었다. 꼭 필요한 게 없어도 오늘은 어떤 물건이 새로 들어왔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할머니들이 직접 뜨개질해 만든 옷이나 이불을 보면서는 그 솜씨에 감탄했고, 손수 만든 듯한 나무 장난감이나 목마를 보면서는 아이와 함께 보냈을 추억의 시간이 떠올라 괜히 뭉클했다. 자신이 직접 키운 식물을 기부하기도 해서 오프샵 한쪽 창가에는 작은 정원이 들어서 있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빨강머리 앤 만화에 나올법한 엔틱 한 접시 세트를 사서 케이크를 구울 때마다 기분을 냈다. 놀러 오는 친구들마다 접시를 보고 귀엽다고 했는데, 총 7개 접시에 15불 정도로 저렴했다. 그리고 선물을 살 일이 있을 때도 이곳을 찾았는데, 예쁜 나무 바구니를 5불에 사서 그 안에 크래커, 치즈, 과일 등을 담아 선물 바구니를 만들거나 예쁜 유리병을 찾아 꽃을 꽂아 선물하곤 했다. 내가 상상했던 물건, 혹은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물건을 발견할 때면 보물을 찾은 듯이 기뻤고, 때때로 그 기쁨을 다른 이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만큼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는데, 이는 오프샵이 자원봉사자들로 운영이 되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주로 은퇴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물건을 수거해 분류하고 세탁하고 정리하는 모든 일들을 담당했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 이곳을 자신의 아지트, 커뮤니티로 생각하시는구나 느꼈는데, 매장 앞 쇼윈도를 꾸미는 모습을 보고서 더욱 확신했다. 행사가 있는 달이면 그 행사와 어울리는 색으로 쇼윈도 전체를 바꿨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빨간색 옷, 모자를 입은 마네킹부터 빨간색 장식품, 그릇 등 빨간색을 가진 물건들로만 진열했다. 그렇게 세인트 패트릭 데이가 있는 달에는 초록색으로, 뉴질랜드의 현충일인 안작데이가 있는 달에는 검은색으로, 핑크 셔츠 데이가 있는 달에는 분홍색으로 시기마다 바뀌는 쇼윈도를 보며 자원봉사자들의 집요한 애정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으로 채워진 공간이어선지 오프샵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고, 어떤 도시를 여행하건 제일 먼저 그곳의 오프샵을 찾아서 구경할 정도가 되었다. 해밀턴의 호스피스 오프샵(Hospice Shop)의 경우 내부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콘셉트로 꾸며놓아서 흘러내리는 모양의 시계가 곳곳에 달려있고, 토끼와 개구리가 테이블에 앉아 티타임을 가지는 커다란 모형이 놓여있어서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싶었다. 입구에 적힌 ‘Buy Today, Or Cry Tomorrow’(오늘 사세요. 내일 후회하지 말고.)라는 문구도 귀여웠다. 일반 가게도 아니고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곳인데 자신의 일처럼 곳곳에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바람 때문에 문이 닫힐 것을 염려해 두는 문 받침대로 오래된 다리미를 쓰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굳이 새로 사지 않아도 예전 것을 이렇게 활용해서 쓸 수도 있구나, 무겁고 튼튼한 다리미는 문 받침대로 딱이었다. 대도시의 오프샵들은 지점마다 분류를 잘해서 편리하기까지 했다. 임신, 출산과 관련된 용품만 기부받아 모아 둔 어번던스 오프샵(Abundance Op Shop), 식탁, 서랍장 등 중고 가구들을 모아둔 해비타트 오프샵(Habitat for Humanity Restore) 등 물품들이 더 세분화되어 있어서 전문적으로 느껴졌다.
공장이 없어서 공산품 가격이 비싼 뉴질랜드에서는 중고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중고를 애용하겠지만 그 이상의 감성이 있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랄까. 쉽게 사고, 편하게 버리는 대신 깨끗이 사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부하는 마음. 중고가 한 번 사용된 물건, 이미 쓰인 물건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아끼고 사랑했던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이를 임신했을 때 신생아용 아기 침대인 바시넷(Bassinet)을 물려받았다. 도로시 할머니는 자신의 딸과 손녀가 사용한 족히 50년은 된 바시넷을 가져오셨는데, 매트리스 커버, 이불, 베개 커버까지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만든 것이었다. 모두 같은 하얀색 천으로 세트였는데, 그 깨끗함과 정교함에 놀랐다. 후에 도로시 할머니의 손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돌려드렸는데, 할머니는 깨끗이 사용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오셨다. 집안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물건을 받았으니 당연히 조심히 사용하고 싶었고, 받았던 청결한 상태 그대로 다른 이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나를 거쳐가는 이 물건이 여전히 가치 있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싶었다. 로이의 유아용 아기 침대(Cot)는 헌틀리 오프샵에서 구입한 것이었는데, 뉴질랜드 토종 나무인 리무(Rimu)로 만들어져서 튼튼하고 향이 좋았다. 아기침대로 유명한 터치우드 브랜드였는데, 요즘은 단종되어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은 오히려 예전에 만들어진 나무 침대를 찾을 정도였다. 남편은 중고로 산 나무 침대를 사포질 하고, 니스칠을 해서 햇볕에 말렸다. 그렇게 우리의 수고가 들어가자, 침대는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저마다 오프샵에서 산 물건들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제니 할머니는 어릴 적 아버지께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보석함을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그 보석함은 오프샵에서 산 나무상자에 바닷가에서 주워온 예쁜 조개들을 붙여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제니 할머니는 오프샵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의 니트를 사서 올을 풀어 손자에게 줄 옷을 다시 만들었다. 요즘 나오는 실보다 예전에 만들어진 울로 된 실이 더 질이 좋기 때문이었다. 베티 할머니는 교회 모임을 집에서 많이 열기 때문에 의자가 많이 필요했는데, 백화점에서 사는 대신 오프샵에서 중고로 나온 의자들을 하나 둘 모았다. 그렇게 모은 의자들에 같은 색의 천으로 덧씌워 모두 한 세트처럼 어울리게 만들었다. 바네사는 자신이 뜨개질해 만든 옷에 붙일 단추를 오프샵에서 골랐다. 단추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알뜰히 모아져 있는 오프샵에서는 독특하고 다양한 단추를 고를 수 있어서 그녀는 딸을 위해 만든 카디건의 마무리를 이곳에서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프샵에서 산 물건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자신만의 보물을 만들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의 아끼는 습관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버리지 않고 고칠 수 있는 힘, 재탄생시킬 수 있는 저마다의 창의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오프샵은 더욱 붐빈다. 물건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공예품, 콜라주(collage)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고심하며 재료들을 고르는 것이다. 기회(Opportunity)의 가게라는 오프샵의 이름은 정말이지 잘 맞는다. 자신이 주지 않으면 찾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기회’처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버려질 수 있었던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된 것처럼, 묻힐 수도 태어날 수도 있는 하루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버릇부터 나의 하루를 허투루 버리지 않는 마음까지 배워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