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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Aug 25. 2020

간판으로 도시를 읽는 시선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오래됨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눈을 빌려드립니다.

이 책은 간판 덕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생업과 병행하며 2011년부터 꾸준히 간판을 기록해왔다. 계속 지속할 수 있었던, 또 지속하고 싶었던 이유는 간판의 모양만이 아니라 그 의미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부터 함께 한 간판이에요.”, “미술교사셨던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거에요.”, “손님들이 바꾸지 말라고 해서,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게 더 좋다고 해서요.” 등등 직접 글씨를 디자인하고 손수 가공해 만든 오래된 간판들은 저마다 애정을 쏟아 만든 것이었고, 동시에 애정있게 바라보는 주인에 의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그림을 그리던 분이 간판을 만들어줬어요. 신식으로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간판이 우리 가게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직접 재료를 다듬고 만들어서 정성이 들어간 우리집 음식처럼, 간판에서도 장인의 노력이 느껴지니까요.”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18쪽

간판은 가게를 알리는 안내판이자,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조형물이다. 간판에 적힌 단어에서 만든 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읽을 수 있고, 간판에 표현된 디자인을 통해 그 시대의 제작 기술과 예술 기법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가게는 주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계획되고, 그 당시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해 업종이 생겨난다. 그러니 간판은 그 도시의 삶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인 셈이다. ‘양화점, 의상실, 혼수이불, 컴퓨터세탁, 쌀집, 얼음’ 등 간판을 읽으며 한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84년 한국 최초의 한글 서체 개발 업체가 설립되었고, 서체가 대중화된 것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된 90년대 이후다. 그 이전에는 간판 장인들이 간판에 어울리는 서체까지 손수 디자인해야 했다. 그러니 옛 간판들은 장인이 자신만의 손글씨로 고안한 세상에 하나뿐인 글씨체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간판이 만든 이의 개성을 담고있는 수공예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스쳐 지나갔던 간판의 모습을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25쪽


쌍둥이 간판은 제조업이 터를 닦고 있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던 정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슷한 글씨체와 생김새 때문에 모두 같은 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만들어진 맞춤형 간판인 것이다. 을지로에는 함석판 위에 붓글씨로 적은 간판을, 문래동에는 새시 문을 선팅해 만든 시트지 간판을 만들며,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공업사의 구조를 반영해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46쪽


‘그저 (가게 광고하는) 간판’이라고 여기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솜씨 좋은 주인이, 재능 있는 친구가, 또 가족이 도움을 주어서 만든 거리의 간판들에서 생활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게의 주인은 “비용을 아끼려고 그랬죠.”라고 무심하게 대답하기도 하지만, 저마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간판에서는 만든 이의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49쪽


나에게 오래된 동네는 오래된 가게가 남아 있는 곳으로 기억된다. 동네를 사랑하는 가게 사장님들이 문화 해설사가 되어,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 옛 주민들과의 추억에서부터 동네의 변천사에 이르기까지 보석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역사와 같은 이들이 없는 동네는 사라진 유물들의 흔적만 남은 발굴터처럼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153쪽


“90여 곳이던 인장 가게가 20여 곳으로 줄었어요. 한 자리를 지키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잘 안되면 직업을 바꿔야 하니까요. 계속 자리를 지켜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177쪽


조금씩 보수하며 오래된 간판을 계속 유지하는 가게들. 나이 들어가는 간판을 보며, 새롭게 만드는 일 못지않게 소중히 여기며 고치는 힘도 길러야 함을 배우게 된다. 기술이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형용사는 보통 ‘뛰어난’, ‘획기적인’이지만, 과정을 보여주는 ‘신중한, ‘고유한’이라는 표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들여다보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버리기보다 고쳐 쓰려는 마음가짐은 대단한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216쪽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흘러나오는 도시에서, 오래된 것이 남아있다는 것은 분명 지키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가게의 주인들은 그저 같은 자리에서 항상 같은 일을 했다고 말할 뿐이지만, 그들의 한결같음이 우리의 일상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익숙하게 향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이정표이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이웃이 되기도 했다.


도시는 빠르게 변해가고 오래된 곳들은 빠르게 사라져 간다. 기록한 가게 중에도 이미 사라진 곳들이 있고, 계속해서 사라져 가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따뜻한 의미를 전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성실히 가게를 일구는 주인들에 의해서, 또 그 자취를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서, 간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을 통해, 오래됨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눈을 빌려주고 싶다.




<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읽는 도시 > 간략 정보

- 저자: 장혜영 / 출판사: 지콜론북

- 사이즈: 150*210mm / 페이지: 224p

- 출간일: 2020년 8월 25일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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