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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Nov 12. 2024

사소한 다정함으로 구원하는 세계

다정함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듯합니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것, 오랜 시간이 아닌 짧은 순간, 계획된 행동이 아닌 즉흥적인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홀로 생계를 책임져온 어머니


어린 시절 혼자 저녁을 먹을 때가 많았습니다. 누군가에겐 화목한 시간이었을 저녁이 저희에겐 걱정과 슬픔의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노동이 저녁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탓입니다. 늦은 새벽까지 광안리 바닷가에서 커피를 팔던 어머니는 늘 제 배고픔을 걱정했습니다. 저를 위해 저를 홀로 둬야 하는 마음이 제겐 한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늘 단출한 저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대신 찬장엔 각종 간식거리가 가득했습니다. “배고프면 꼭 간식 챙겨 먹어.”라는 쪽지가 밥상 위에 놓여 있곤 했습니다. 그 말이 꼭 미안하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커피 대신 폭죽을 팔았습니다. 폭죽은 민원인들의 신고로 자주 경찰에 빼앗겼죠. 혹시나 폭죽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밀린 잠을 버려둔 채 아침 일찍 경찰서에 가던 뒷모습을 지켜보던 순간들. 저는 어머니를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해방의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취직한 뒤에 제가 주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어김없이 새벽 늦게까지 폭죽을 팔았습니다. “더 무리해서 걸으면 무릎의 연골이 닳아 사라집니다. 수술비가 더 들 수도 있어요.”라는 의사의 말이 결국 노동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후로 어머니는 노령연금과 제가 준 생활비를 아껴 가며 팍팍하게 살았습니다. 오르지 않는 월급이 야속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뜻밖에 찾아온 여유를 공허하게 보냈습니다.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쓰냐는 제 물음에 바닷가에 앉아 몇 시간이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쳐다본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우연히 들은 평생 학습 프로그램엔 퇴직 후 여유로운 배움으로 외로움을 메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서예와 한지 공예를 하는 노인들. 저도 슬쩍 평생 학습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영 무관심했습니다. 그즈음 어머니는 외로움이 힘겨워 종종 우울증 약을 먹곤 했습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건


가끔씩 함께 저녁을 먹고 거리를 걷는 날은 위태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무릎의 상태가 안 좋아졌고, 저는 혹시나 넘어지지나 않을까 계속해서 발걸음을 살피게 되었죠. 각자의 속도로 앞만 보며 빠르게 걷는 사람들 틈에서 저희는 호흡을 맞춰가며 느릿하게 걸었습니다. 이후로 저 없이 혼자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 불안함이 앞섰습니다. 무신경하게 걷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건 아닐까. 힘없는 노인이라고 함부로 대하지나 않을까.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어쩌나. 숱한 걱정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걱정은 노인들을 향한 차디찬 언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뉴스와 언론에선 고령화와 증가하는 노인 인구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야기하곤 하죠. 몇몇 노인들의 행동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사람들은 ‘틀딱충’이라는 날선 언어를 거리낌 없이 내뱉습니다. 뉴스 영상 댓글에도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가득합니다. 버스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노인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는 노인들을 무례하다며 욕하기 일쑤입니다. 그 누구도 청력과 시력이 저하돼 소리와 사물을 인지하기가 힘든 그들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 듯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나이 들고 무례한 할머니에 불과하겠지요.

 

이유 없는 다정함의 힘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공공 일자리를 신청했다고 하더군요.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신발 장을 치우고, 마당을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는 겁니다. 한 달에 29만 원이나 받는다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영 달갑지 않았습니다. 오르는 물가를 불평하며 살림살이가 힘들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 걸. 돈을 조금만 더 잘 벌었더라면, 생활비를 넉넉하게 줬더라면. 미안함과 속상함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마음을 차마 내뱉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어린이집 직원들이 따뜻하고 상냥했습니다. 무리하지 마시라고, 힘들면 언제든 쉬시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직원들 덕분에 힘들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같이 일하는 분들도 유쾌해서, 그분들과 하하호호 웃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금방 흐른답니다. 어느 날 들뜬 목소리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재밌고 즐겁다며,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웃는 목소리가 괜스레 민망했습니다. 본인만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메우는 중일 거라며, 그렇게 당신의 노동을 조용히 응원했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어머니는 예전보다 밝아지셨습니다. 무엇보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외로움과 우울함을 토로하던 지난날과는 달리, 이제는 저를 만나면 늘 주변 사람들과 있었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보여준 사소한 배려, 출근 버스에서 만난 젊은 엄마들과 나눈 정겨운 대화, 같이 일하는 동료와 나누는 인생 이야기, 어린이집 앞 카페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쿠키까지. 저희 어머니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다정함을 베푸는 사람들 덕분에 어머니의 우울은 서서히 말라가는 중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정할 것


어느 순간부터 그 다정함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타인들에게 베푸는 다정의 빈도와 크기만큼, 제 어머니에게도 더 큰 다정함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던 길거리에 많은 노인분들이 보이더군요. 스마트폰으로 버스 차선을 검색하지 못해 주변인들에게 일일이 길을 물어보는 노인들,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의 문턱이 높아 승하차를 힘들어하는 노인들, 카페의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주문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 무거운 짐을 든 채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가는 노인들. 그분들은 모두 제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괜한 오지랖처럼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망설임을 이겨내고 사소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노선을 검색해 드리고,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는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요.

 

최근에 민정호 작가의 「이유 없는 다정함」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문장에서 영감을 받은 에세이인데요. 이 책에 인상적인 말이 있더군요. ‘다정해야 할 순간이 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정해지자.’ 책 안에는 김연수의 소설과 일상의 경험이 엮여 만들어진 다정함의 세계가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어색한 사이인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 자신을 향한 선의를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하는 일 모두 우리가 베풀 수 있는 매우 크고 중요한 다정함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러고 보면 다정함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듯합니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것, 오랜 시간이 아닌 짧은 순간, 계획된 행동이 아닌 즉흥적인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소함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 줄 수 있는 거겠죠. 그렇게 위로받은 마음이 모여 이 세상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책 제목처럼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모두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다정해지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다정함이 한 존재가 품은 세계를 온전히 지켜내는 데 큰 힘이 될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우리의 아주 작고 사소한 다정함만으로도 이 세계를 구원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글. 김형성 작가


고등학교 국어 교사.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에세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좋아합니다. 작은 이야기들을 소중히 여기며 틈틈이 글을 씁니다. <당신의 그늘을 읽어드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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