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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오프 Jan 21. 2022

저평가된 '보람'에 대하여

소모되지 않기 위한 일의 가치와 의미


경험치가 쌓일수록 일에 대한 '보람'보다 '성과'를 쫓게 됩니다. 신입사원 때는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을 때, 성과를 생각하기보다 보람을 먼저 느꼈을 겁니다. 지금 하는 일이 우연히 시작한 일이라도, 분명 꾸준히 해온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저는 그게 보람이라고 생각하구요. 


요즘 저는 2번째 이직을 준비하면서 BTL 기획자의 일에 대해 돌아보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척하는 건 아닌지, 꾸준히 해 나갈 수 있겠는지 자문자답을 해보는 거였죠. 이 과정에서 모든 질문이 한 가지로 좁혀졌었습니다. "내가 보람을 느낀 적이 언제였지?" 일할 때 언제 보람을 느꼈었는지, 왜 느꼈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죠. 그랬더니, 인턴사원 시절 사수가 제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7년 전, 그러니까 2015년도에 만난 첫 사수는 꽤나 나이 차이가 나는 선임들 사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맞는 말을 유쾌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알리는 일이 좋다며 광고 AE와 디지털 마케터, BTL 기획자 중 진로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본인은 왜 BTL 기획자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기억을 더듬으면 서울역 인근 회사 1층 카페에서 최소 30분 이상을 이야기 나눴던 것 같습니다. 좋고 싫음이 선명한 사수의 말과 표정이 저를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그땐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었는데 지금 제 기억에 남아있는 건 딱 한 문장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획한 결과물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아요"


이 한마디는 제가 BTL 기획자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이자 업으로 느끼는 첫 번째 보람이었습니다. 제가 기획에 참여하여 팀원들과 함께 만들어 낸 공간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벅찬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 경험이 다음번에 일을 할 때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뭐, 솔직히 매번은 아니었지만 자주 그래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과 성과 속에 더 중요한 걸 잠시 잊고 지냈지만, 이번 계기로 다시금 보람을 통해 일에 대한 의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수 분과는 서로 위치에서 가끔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을 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람을 느꼈지만, 역시 결과물에 대한 고객분들의 반응이 더 큰 보람으로 와닿았습니다. "고객들이 즐기는 표정과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 어쩌면 잊지 못할 하루를 선사해드렸다는 보람",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일은 언제나 근사한 일이니까요. 이것이 제 일을 하며 느끼는 두 번째 보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제가 구현해내는 실체는 전시, 공연, 페스티벌입니다. 고객들이 즐기는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 있을 때는 덩달아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듯합니다. 더 뭔가를 해드리고 싶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간의 고생을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상사도 클라이언트도 아닌 고객분들에게서 말이죠. 이렇게 고객들에게 거짓 없는 피드백을, 그것도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마케팅이 또 있을까요? 


저는 위 2가지 보람을 통해, 제가 하는 일을「고객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고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람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너무 저평가되어있단 생각을 합니다. 흔히 어려운 상사분들이 야근이나 주말출근 강요하면서 수당보다는 보람을 가져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유명한 직장인 웹툰만 봐도 맥락상 '보람'이 돈보다 '필요 없는', '무의미한' 느낌으로 풍자되어 표현되다 보니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만족감 또는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라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해서 생각하다 보니 보람이란 건 누가 강요해서 얻어 질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이직을 앞두고 일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몇 가지 프로젝트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했던 걸까?", "진짜 쳐내기 급급했었네"라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고 정의해놓지 않으면 소모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다행히 보람을 통해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잊고 있던 2가지 동기부여를 다시 얻을 수 있었구요.


저에게도 "나는 회사의 부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만 지나고 나면 스스로를 부품이라 치부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듯합니다. 



모두들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라면,
하기 바쁜 일 보다 해서 기쁜 일들을 많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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