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 즉 노동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든 많든 노동을 통해 돈을 번다. 그렇다면노동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노동(勞動)은 사람의 생계·생존·생활을 위한 모든 것들 또는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를 얻기 위해서 특정한 대상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그 시간만큼 사람은 노동 외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 즉 여가를 희생해야 된다.
다시 말해 노동이란 노력과 시간을 input으로, 돈을 output으로 갖는 함수다. 그런데 이 함수의 기울기와 시작점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적은 노력으로도 큰돈을 벌고 또 어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 나아가 우리가 공들여 번 돈은 또다시 누군가의 시간을 사기 위해 쓰인다. 서로의 함수가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의 시간과 돈이 바쁘게 오간다.
출처 :pexels @ zhang kaiyv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며 생각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내는 것이 나는 왜 이토록 힘들까. 단순히 몸이 고된 이유만은 아니었다. 주부의 노동은 돈으로 보상받지 못했고 어느 날은 이것이 정녕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삶이 그리웠다. 그러나 다시 직장 생활을 하려면 도우미를 구하거나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시간을 돈으로 사거나 여가의 희생을 강요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들을 계산해보니 차라리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올 텐데 그때 내 앞에 남겨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남은 생을 살까. 놀면 좋겠지만 마냥 놀기만 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낸다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또 '언젠가 남편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하는 앞선 걱정도 있었다. 사는 일에는 돈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살뜰히 돈을 벌고 모아야 했다.
출처 :pexels @Anna tarazevich
나는 파트로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전환했고 남편 또한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해 시작하게 되었다.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양보한 우리는 아이들이 하원한 이후와 주말은 절대 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것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전공을 벗어나 그동안 해오던 일을 관두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만 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지만 덕분에 우리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맞는 여유로운 아침, 등원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의 여유, 놀이터에서 보내는 한두 시간, 블록을 쌓는 아이들 옆에서 빨래를 접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저녁들. 부모님 세대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었던 방식으로, 원할 때 일하거나 혹은 일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우리. 노동이라는 권리와 의무 앞에서 나를 잃지 않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