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는 후배들이나 한참 어린 동생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안함이 들고 작아진다. 올해로 연예부 기자 생활 만 9년, 하지만 사실 나의 꿈은 기자가 아니었다. 기자를 꿈꿨던 적도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시작은 그랬지만 9년이란 시간을 지나오면서는 달랐다. 도전 의식이 불탔고 늘 새로운 도전에 목이 말랐다.
2011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한 차례 미뤄놓은 졸업 연기로 코스모스 졸업을 해야 하는데 정작 그 안에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할지 혼란이 찾아왔다. 스스로 들여다봤을 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3년 동안 성우라는 꿈을 가지고 공부했지만 그곳에서의 내 실력은 냉정하게 말해 그렇게 큰 희망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곁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합격하는데 난 매번 1차부터 떨어졌으니,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당장 미래의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이곳저곳 지원서를 넣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연예부 인턴기자 공고'였다. '에이 내가 무슨 연예부 기자?'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연예인 좋아하고, TV 좋아하니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시작했다. 기사를 써본 적 없던 내게 '시작'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혼나기 일쑤였고 회사 내 '폭탄' 같은 존재였다. 어디서 무슨 일을 터뜨릴지 알 수 없는 문제의 막내였다.
그런 내게 롤모델이 생겼다. 20년 이상 이 바닥에서 이름 날리며 일해온 선배의 모습을 보니 '와, 저 사람은 이름이 명함이야!'란 생각이 들며 훗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그가 내준 미션 수행이 쉽지 않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나의 첫 인터뷰이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장태유 PD를 만났던 그 순간 말이다. 선배의 압박에 못 이겨 부탁하고 또 부탁해서 겨우 만난 PD님. 이제 와서 말이지만 애송이와 스타 PD의 만남, 이 오묘한 조합에 PD님이 정말 답답했을 것 같다.
어느덧 기자 생활 9년, 되돌아보니 난 어릴 때부터 'TV광'이었다. TV를 통해 정보를 얻고 TV를 통해 울고 웃었다. TV를 켜며 눈을 떴고 눈을 감을 때까지 TV를 보는 그런 아이였다. TV 중독증에 대한 걱정으로 엄마, 아빠가 TV를 못 보게 했지만 몰래 나와 TV를 볼 정도로 TV를 좋아했다. TV를 통해 얻은 정보는 현재 내게 큰 자산이다. 'TV광'에겐 지금도 TV를 보는 일이 즐겁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는 게 흥분된 일이다.
기자 일을 하면서 무엇을 해냈을 때 오는 '쾌감', 그리고 내 기사로 인해 그날의 포털사이트가 뜨거운 걸 봤을 때 '보람'을 느꼈다. 이러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이 일에 흥미를 느꼈다. 아니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 어쩌다 보니 시작한 일인데 난 이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 일에서 느끼는 보람이 나의 인생의 원동력이 됐다. 인간의 모든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난 우연히 넣은 지원서를 통해 나의 적성,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그것이 연예부 기자고, 이 일을 하면서 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주변에서 묻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나요?' '행복한가요?'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게 이 일보다 적성에 맞는 일은 없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 앞에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이것을 일로 승화시켜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난 세상에 몇 안 되는 행운아가 아닌가.
긍정적인 생각 안에서 감사함을 찾기로 했다. 내가 꿈꿨던 첫 시작, 비록 성우란 꿈은 이루지 못했다. 무작정 시작한 일 안에서 소위 잘 나가는 '백' 하나 없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구르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열심히 구르는 중이다. 가진 게 없으니 열심히 뛰는 수밖에. 그래도 난 행복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지금도 할 수 있다. 오늘 하루가 힘들지라도 다음 날 또 일어나 자동적으로 노트북을 켠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