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평양냉면집
을밀대는 평양8경중의 하나이다. 고구려에서 6세기경 축조한 평양성 내성의 누각이었고, 부벽루, 사허정 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라고 검색을 통해 알게된 내용을 적어보았다)
십몇년 전 두번째 직장인 은행을 다닐 때였다. 당시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던 회사 선배 형님을 통해 처음으로 평양냉면 - 정확히 말하면 평양물냉면을 먹어보게 되었다.
기차여행을 다녀오던 형님은 좌석 칸칸이 꽂혀있는 잡지에서 우리나라 양대 냉면집에 대한 글을 읽었고, 거기서 본 을밀대 냉면을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결심한 형님을 따라 어느날 나는 당시 은행본점에서 멀지 않은 마포에 위치한 을밀대를 처음 가보게 되었다.
누구나 그랬듯 나역시 처음 2~3번은 밍밍한 수돗물에 담긴 메밀면을 건져먹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맛있다'라는 표현을 하기가 너무 애매한 지점에 평양냉면이 있었다. 맛이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無맛 - 맛이라는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녹두전은 먹을만했으나 물냉면의 없는 맛 때문인지 녹두전 마저도 맛을 그다지 느낄 수 없었고, 비빔냉면도 메뉴에 있었으나 먹지 않았다.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라는 상식(?)에 따라 일단 물냉면부터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네번째인가 형님과 같이 방문했을 때였다. 여전히 맛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새로운 관점으로 냉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면을 끊지않고 후루룩 빨아당겨 대충 한입정도로 끊어 씹지도 않고 삼키면, 말그대로 온몸으로 평냉을 느낄 수 있게되지 않을까 하는 대략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수도물같던 냉면육수는 육향이 나는 짭짤하고 시원한 육수로 변했고, 그 육수가 적당히 배어든 메밀면은 내 몸에 맛과 함께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생리학적으로나 화학적으로 그랬다는게 아니라, 뭔가 맛이 난다고 느끼기로 나 스스로 플라시보 효과를 적용한 것 같다. 어쨌든 이날 처음으로 맛에 대한 감동을 느꼈고, 국물까지 다 먹어치웠다.
그 이후에 여러 평냉을 먹어봤고, '온몸으로 느끼며 먹어봤지만' 아직까지 이때의 감동을 주는 냉면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을밀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일 맛있는 평양물냉면집이다.
오늘 예전 직장의 후배들과 만나서 을밀대 물냉면과 녹두전을 먹었다. 마포본점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최고의 맛이었고 '양많이'를 시켜서인지 국물을 좀 많이 남겼다. 4시도 안된 시점에 점심때 남긴 국물이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나는 여전히 돼지인것 같고 그래서 배가 부르더라도 국물까지 다 먹었어야 했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