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특별 May 06. 2022

[오늘의 일기] 을밀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평양냉면집

을밀대는 평양8경중의 하나이다. 고구려에서 6세기경 축조한 평양성 내성의 누각이었고, 부벽루, 사허정 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라고 검색을 통해 알게된 내용을 적어보았다)


십몇년 전 두번째 직장인 은행을 다닐 때였다. 당시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던 회사 선배 형님을 통해 처음으로 평양냉면 - 정확히 말하면 평양물냉면을 먹어보게 되었다. 


기차여행을 다녀오던 형님은 좌석 칸칸이 꽂혀있는 잡지에서 우리나라 양대 냉면집에 대한 글을 읽었고, 거기서 본 을밀대 냉면을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결심한 형님을 따라 어느날 나는 당시 은행본점에서 멀지 않은 마포에 위치한 을밀대를 처음 가보게 되었다. 


누구나 그랬듯 나역시 처음 2~3번은 밍밍한 수돗물에 담긴 메밀면을 건져먹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맛있다'라는 표현을 하기가 너무 애매한 지점에 평양냉면이 있었다. 맛이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無맛 - 맛이라는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녹두전은 먹을만했으나 물냉면의 없는 맛 때문인지 녹두전 마저도 맛을 그다지 느낄 수 없었고, 비빔냉면도 메뉴에 있었으나 먹지 않았다.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라는 상식(?)에 따라 일단 물냉면부터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네번째인가 형님과 같이 방문했을 때였다. 여전히 맛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새로운 관점으로 냉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면을 끊지않고 후루룩 빨아당겨 대충 한입정도로 끊어 씹지도 않고 삼키면, 말그대로 온몸으로 평냉을 느낄 수 있게되지 않을까 하는 대략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수도물같던 냉면육수는 육향이 나는 짭짤하고 시원한 육수로 변했고, 그 육수가 적당히 배어든 메밀면은 내 몸에 맛과 함께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생리학적으로나 화학적으로 그랬다는게 아니라, 뭔가 맛이 난다고 느끼기로 나 스스로 플라시보 효과를 적용한 것 같다. 어쨌든 이날 처음으로 맛에 대한 감동을 느꼈고, 국물까지 다 먹어치웠다.


그 이후에 여러 평냉을 먹어봤고, '온몸으로 느끼며 먹어봤지만' 아직까지 이때의 감동을 주는 냉면은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을밀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일 맛있는 평양물냉면집이다. 


<오늘 점심에 먹은 을밀대 물냉면. 저 국물을 다 흡입하지 못한것이 자꾸만 후회된다>


오늘 예전 직장의 후배들과 만나서 을밀대 물냉면과 녹두전을 먹었다. 마포본점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최고의 맛이었고 '양많이'를 시켜서인지 국물을 좀 많이 남겼다. 4시도 안된 시점에 점심때 남긴 국물이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나는 여전히 돼지인것 같고 그래서 배가 부르더라도 국물까지 다 먹었어야 했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일기]Nationalis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