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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단어들 12 ”자리”

선택과 쓸모와 책임이 있는 곳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단어들 12

”자리”

1.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2. 사람의 몸이나 물건이 어떤 변화를 겪고 난 후 남은 흔적.


3.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설비나 지정한 곳.


4. 일정한 조직체에서의 직위나 지위.


5. 일정한 조건의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 흔히 일자리나 혼처를 이른다.


6. 일정한 사람이 모인 곳. 또는 그런 기회.


“결국 자신이 선택한 곳, 쓸모를 다할 곳, 책임이 동행하는 곳.”


이번 일정은 어쩔 수 없이 병원과 관련된 일정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들은 결국 ’자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의대 정원‘에 관한 이슈가 첫 번째,

’공천‘에 관한 것이 두 번째였습니다.


’자리’는 인류가 문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자는 자리, 먹는 자리, 사는 자리에 따라 신분이 나뉘기도 했고,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동의합니다만, ’자리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라는 말도 포함하고 싶습니다.


2020년부터 생각한 자리에 관한 고민,

’내가 있을 자리‘, 즉 ’쓸모‘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자리‘를 이동하라는 제안을 몇 번 받았습니다.

솔깃할 수 있는 제안이고, 저에게는 충분히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자리를 서른 살에 거절했기에, 여러 자리에 대한 거절은 쉬운 편입니다.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고 싶고, 이왕이면 ‘내가 있고 싶은 곳’이길 바랍니다.

그곳이 아직은 저에게 ‘칭다오’입니다.


‘자리’를 지키는 일엔 고단함이 있습니다. 펭귄이 가만히 서 있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듯,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왕 ‘자리‘를 얻었다면, ’잘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자리‘를 얻는 일만큼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노력하고 있는가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리‘만 잘 지켜도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도서관을 만들 때보다 지금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합니다.


그리고 ‘공공성‘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힘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누가 의사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국회의원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닐 것입니다. 떠밀렸다고 해도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니까요. 책임 또한 자기 몫일 것입니다. 저 또한 제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의사나 국회의원이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평범한 소시민이나 모두 각자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질 거 같습니다.


일주일 동안 생각한 단어는 ’자리‘,

칭다오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책을 덮고 부지런히 타이핑을 칩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지금, 모두 한 식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가 네가 있을 자리인가보다." 미나코 씨의 아버지가 하셨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있을 자리'는 일본어의 '이바쇼'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문자 그대로 '있을 곳' 또는 '거처'라는 뜻이지만, 나아가 자신이 존재해야 할 장소,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_미나코 알케트비, 『사막의 우리집』(전화윤 옮김, 난다, 2020) 중에서

‘있을 자리’에 대한 고민은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24.02.29. 2월의 보너스 윤일에,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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