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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경향도서관, 초심

도서관 6주년 기념, 돌아보기


<도서관, 초심>

도서관을 처음 개관하고자 했을 때 나의 계산은 너무나 간단했다.

골프, 테니스, 술, 담배를 안 하니 격주로 필드 나가고, 주 3회 테니스 치고, 하루에 한 갑 담배를 태우고, 하루에 한 병 소주를 마시는 비용이면 도서관 하나는 만들어서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 단순한 생각, 자칭 치밀한 몽상가인 내가 일하는 방식이 이렇다.


그림 한 장 그려놓고 시작하는 것. 물론 그림을 그리기까지 수많은 리스크를 계산하지만, 겉보기에는 어처구니 없을 때가 많을 것이다. 애초에 '열린 공간', '공유 공간'을 생각해 두고 있었으니 돈도 안 되고,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물어보는 이들도 많았다. "저희 도서관에는 나중에 작가님도 오시고, 출판사에서 책도 보내주시고, 문화 행사도 진행하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반응도 잊지 않고 있다(A형이라 뭐든 오래 기억한다).


2018년 4월 4일,

나는 아래와 같은 글로 도서관의 개관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경향한글학교입니다.

저희는 작년 3월 영사관에 등록된 청양바오롱광장에 위치한

한글학교입니다. 한글학교를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책을 가져오기

어렵다는 학부모님들의 고충을 듣고 어린이 도서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1,000권 정도 기증을 받고, 칭한모를 통해 지난 1년간 책을 모았습니다.

1차 목표 1,500권을 넘겨 한글학교 학생들에게 먼저 개방하였고, 이번에 2차 목표 2,000권을 넘겨 교민들에게 개방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책을 모으는 데 도움을 주신

모든 교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작은 도서관이지만 교민들께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차 목표 3,000권 달성을 위해 도서 기증도 받고, 적당한 가격에 구매도 합니다.

언제든 연락 주시면 청양과 천태까지는 찾아뵙겠습니다. 조용히 공부하고 작업하시고 싶은 분들도 환영합니다."

_2018년 4월 4일에 올린 도서관 개관 공지 중에서


열린 공간, 학생들의 쉼터, 교민들의 작업 공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개방성'이다.

당시 운영되던 여러 도서관을 본 결과, '개방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칭다오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 하나는 만들고 싶었다.

종교가 달라고, 민족이 달라도, 이념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다.


6년이 지난 오늘, 지난 과거의 흔적을 하나씩 모아보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나는 지나가는 길목마다 '과자'를 하나씩 떨어뜨려 놓았으니, 그 길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아마도 내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 그동안 망설였던 거 같다. 이병률 시인과 남궁인 작가와의 대화에서 결론을 내렸다. '각오하고 쓰는 것이 아닌가. 내 글이 공개되었을 때 일어나는 모든 영향들을.'


가끔 허공에 대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글에도 반응해 주시는 독자들이 있다. 가끔은 생각보다 많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내 글의 독자들은 대부분 좋아요 따위를 누르지 않으니 가끔 올리는 영상의 조회수로 가늠해 본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작은 지도가 되면 좋겠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나만의 길'이기에 이것이 정확한 길도, 정답인 길도 아닐 것이다. 다만, 수많은 갈림길 중에서 내가 가본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길도 있는데, 저는 어디서 넘어지고 일어났어요.'라고.

무엇보다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글이 도서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에게 답이 되길 바란다.


'초심'을 자주 상기한다. 세상에는 '돈'보다 귀중한 게 분명히 있고,

나는 '돈'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 것을 추구한다. '사랑'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고, 정확히는 '내가 받은 사랑'과 '내가 줄 사랑'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걸 지향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사랑은 읽을 책처럼 쌓여가서 돌려줄 길이 없어졌다. 그저 멈추지 않고 사랑하는 일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도서관은 '사랑' 위에 세워진 것이다.

6년 전엔 상상만 했던 사랑을 현실로 받고 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꿈은 광대하게, 계획은 세밀하게, 실천은 성실하게.

 

오늘 공항 가는 길에, 10년 뒤 경향도서관의 모습을 잠시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6년 전 경향도서관은 '한글학교 어린이 도서관'으로 시작했다.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2018.04.06.

2024.04.06

_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덧,

작가님들께는 다시 뵙자고 인사드렸습니다.

다시 오시고 싶다는 말씀과 칭다오가 좋았다는 말씀 모두 들었습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이병률 시인님과 남궁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소식은 내일 전하겠습니다. 


2024년 이병률 시인님과 남궁인 작가님이 다녀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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