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45년의 성벽,
길 위에서 건져 올린 맛의 파편

사라진 노포의 향수를 부평 시장의 닭강정으로 달래며.....

by 까칠한 한량

3,000곳이 넘는 식당을 다녔다는 것은 단순히 맛을 본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의 생애가 통째로 녹아있는 세월과 조우하고, 그 치열한 일관성을 목격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 북촌과 정릉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 기록의 허망함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북촌에서 네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식당이 카페로 바뀌어버린 광경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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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원짜리 고구마탕 하나에 서울의 옛 정취를 느끼던 그 소박한 기쁨이 세련된 인테리어와

커피 향에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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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아픈 건 정릉의 ‘남기남 호떡’이다.

45년의 세월, 냉동고에 얼렸다 먹어도 그 결이 살아있던 독보적인 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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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건강이 무너지자 그 단단하던 45년의 성벽에 ‘임대’라는 두 글자가 잔인하게 박혔다.

맛은 결국 사람의 몸에 기댄 유한한 유산임을, 그 종이 한 장 앞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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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된 기억의 조각을 품고 도착한 부평시장은 마침 마감의 소란으로 가득했다.

절반은 문을 닫았고, 남은 이들은 하루의 끝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그 아수라장 속에서

묘한 생경함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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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끝자락 노점, 태국인이 직접 볶아내는 6천 원짜리 새우 팟타이다.

큼지막한 새우 두 마리가 올라간 팟타이에 레몬즙과 고춧가루, 액젓을 듬뿍 뿌려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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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을 감도는 감칠맛과 숙주의 아삭함이 잃어버린 노포에 대한 애잔함을 잠시나마 밀어냈다.


부평 시장 한복판에서 방콕 야시장의 열기를 느끼며 깨닫는다.

사라지는 맛이 있다면, 또 어딘가에선 이토록 생생한 맛이 새로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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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은 자연스레 긴 줄이 늘어선 ‘김판조 닭강정’으로 향했다.

5천 개가 넘는 리뷰가 증명하듯, 갓 튀겨낸 생닭의 쫄깃함과 양념의 조화는 정직했다.


10여 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이름값 하는 맛이다.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닭강정 봉투의 묵직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우는 기억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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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과 정릉에서 잃어버린 향수는 부평의 팟타이와 닭강정으로 잠시나마 대신해본다.

새로이 발견한 이 맛들이 부디 사장님들의 건재함 속에 45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견디며 또 다른 누군가의 노포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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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깃든 공간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아련한 행복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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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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