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일과 일의 연속에서 균형찾기란
집에서 좀벌레가 나왔다. 그것도 매트에서
워킹맘 1년 하고도 5개월 차. 집에서 좀벌레가 나왔다. 남편이 자는 방 침구 매트를 오랜만에 거둬내자 벽과 매트 틈 사이에서 빠르게 좀벌레가 기어갔다. 사실 처음에는 그게 벌레인지도 모르고, 먼지 뭉치가 바람에 굴러가는 건 줄 알았더랬다. 벌레를 잡지 못하는 나는 9살 꼬마 아들을 소리쳐 불렀지만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좀벌레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좀벌레가 나온게 내 탓이야? 청소는 온전히 내 몫인데, 나 혼자 대체 어디까지 해야해?'
장장 7년을 전업주부로 살아 온 살림꾼인 나는 집안일을 늘 강박처럼 해냈다. 아이를 업은 상태로 매일 쓸고 닦느라 허리가 망가진 건 물론이요, 이유식 한 번 시켜먹인 적 없으며, 나름 타협 본 것이 화장실 락스 청소를 이틀에 한 번으로 미룬 것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 한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원서를 넣었고,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1시간 반 거리의 회사에 출퇴근하는 워킹맘이 되었다.
처음에는 전업주부 시절 강박을 내려놓지 못해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와서도 '환기'와 '청소'를 꼬박 꼬박 하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나를 맞이하는 것은 전업주부 시절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쌓여져 있는 아침식사 설거지'과 '환기되지 않은 집', 그리고 '털지 않은 침구' 등 이었다. 새벽 출근하는 나 대신 출근시간이 여유로운 남편이 아침 및 아이들 등원을 담당하고 있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하느라 남편도 진땀을 빼는 모양이었다. 아침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내 욕심에 직장을 다닌다는 미안함으로 나는 나머지 모든 집안일을 내 몫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체력은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고 점점 혼자 하는 집안일에 지쳐갔다. '나'를 돌볼 여유가 없는 삶에서 남겨진 건 어느새 7kg이나 불어버린 몸무게와 억울한 마음이 불러온 무기력증이었다.
잡지 못한 좀벌레가 숨어들어간 곳은 어디일까. 정리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책이 꽂힌 책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 거실엔 집에 쇼파 들여놓는다고 일단 임시로 빼놓은 애들 책이 책장도 없이 쌓여 있는데. 아, 애들 장난감 수납장 처분하고 나니 티비 다이에 장난감이 산더미네. 일주일에 한번 바닥청소도 겨우 하는데 정말이지 저건 못치우겠다.
좀벌레는 좀벌레 약으로 퇴치해야겠다 생각하며 여느 때처럼 아이들 저녁을 챙겨 먹였다. 설거지를 하려고 수세미를 삶는데, 가스렌지 한켠에 뽀얗게 먼지가 쌓인 양념통이 보인다. 와, 나 이런거 절대 못보고 살았는데, 생각하며 '나의 부엌'을 찬찬히 돌아 보았다. 정수기 위, 전자렌지 위에 쌓인 일상적인 먼지들. 그러다 도마를 올려놓고 식재료를 썰던 도마대(?)를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여기도 먼지가 쌓여있네. 반찬 만들기에 지친 내가 한달 전부터 반찬 배달을 시켜먹기 시작하면서 부엌에 설 일이 많이 줄었다. 내가 놓아버리고 돌보지 않은 부엌은 먼지로 덮여 있었고, 나의 아이들, 내 가족은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내려놔야 한다', '슈퍼우먼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집안일은 당연히 분담해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회사에서 '일잘러'라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집에서는 일을 덜 하고 싶은 보상심리가 생겨났다. '나'의 체력에는 총량이 있기에, '문제되지 않을 정도'만 집안일을 한 결과 빨래, 청소, 아이들 숙제 등 모든 것이 겨우 겨우 간신히 돌아갔다. 그러나 오늘 '나의 부엌'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쳐서 버려둔 영역의 것들이, 도리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돌보아야 할 것들이었다고.
내 안의 '억울함'이 이기도록 내버려두기엔 잃을 것이 너무도 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