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배낭여행일기3) 행복의 조건

바랑코 투어 마무리는 맥주

by dearmycanada


KakaoTalk_20191121_160347305_03.jpg 숙소의 뷰



집을 나와 거의 30시간은 아메리카 대륙 공중에서 보낸 것 치고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마도 식사를 제때 챙겨먹지 못해서 배고픈 것도 있고 숙소 창문으로 들리는,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파도소리에 느낀 설렘이 도파민을 분출시키나보다.



KakaoTalk_20191121_160347305_01.jpg 오트밀 먹는 중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칠흙같은 캄캄함에 바다가 있구나 정도만 알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다시보니 너무나 멋진 바다의 풍경이 있었다. 이 바다가 그 드넓은 태평양이구나, 생각하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다를 몇분동안 뚫어저라 주시했다. 그러다 Cesa씨가 방에서 나와 바다를 보는 것을 멈추었다. 꾀죄죄한 얼굴, 짙은 다크에 머리는 빗지도 않아 산발을 한 동영여자애가 바다만 뚫어져라 보고있으면 조금 소름끼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작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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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둘도 없는 여행 메이트가 있다, 미놀타 X-370. 온갖 종류의 카메라를 동등하게 좋아하지만 이 미놀타보다 더 좋아할 자신이 없다. 처음 거금을 주고 구매한 나의 취미이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의 대부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시애틀 여행을 갔을 때 내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앞 렌즈가 깨졌지만 그리고 코니카라는 새로운 카메라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미놀타의 촉감과 셔터의 소리를 가장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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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약해둔 Barrancco 투어버스를 타야 했는데 문제는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투어 정보지에 찍힌 곳을 무작정 우버를 타고 찾아갔다.내린 곳은 번화가 한가운데 였는데 길가에 투어라고 적힌 박스가 있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니가 찾는 곳이 여기라고 말해주었다.몬트리올에서 행운을 다 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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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코'라고 하는 지역의 리마의 일부 인데 쉽게 말하자면 '서울'의 이태원, 청담, 홍대 처럼 그 구역을 나눠 놓은 곳이다. '리마'가 페루의 수도라면 내가 머물고 있는 미라로폴리스는 '강남'정도가 되겠고바랑코는 글쎄, 아마도 '홍대'정도가 되겠다.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때는 미라로폴리스가 상대적으로 더 안전해이쪽에 숙소를 잡고 바랑코는 낮에 투어하면 좋다고 안내되어 있었다.나는 위험하다는 말에 괜시리 겁을 먹어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오히려 남은 3-4일을 다 바랑코에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 할 정도로 내게 바랑코는 굉장히 '페루'같은 곳이었다. 이유는 세가지였다.



바랑코의 음악, 색 그리고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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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외국인들' 그렇지만 나 빼고는 다 백인이였던 조금은 어색한 투어버스에서 내려서 모두 가이드를 따라 졸졸 바랑코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풍경을 둘러보는 순간 직감했다. 나는 여기에 또 오겠구나! 건물은 회색빛을 허용하면 안되는 것 처럼 색이 입혀져 있었다. 때로는 붉은색, 때로는 노란색 때로는 새파란색. 상상하고 그려왔던 남미,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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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는 버스킹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고난생 처음 듣는 종류의 음악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배경음악처럼 없으면 서운하고 하지만 진하지 않은 그런 인상을 받았다.사람들은 -물론 현지인들만- 그 음악에 몸을 맡기고 노래를 즐겼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는데, 아쉽다. 같이 춤춰줄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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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버스에서 내리니 시간은 약 3시 30분 정도, 배고픔이 밀려왔고, 카페인이 절실했다. 나는 나름의 여행 규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맛집을 찾지 않는 것이다. 일부러 피해다니는 수준이랄까,뭔가 대단한 철학이 있어보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배고픔을 참고 장소를 찾고 줄을 서는데 참을성이 좀 없다. 이번에도 무작정 길에서 보이는 곳을 들어갔다. 통하지 않는 영어로 부랴부랴 커피를 시켰고,한 모금 넘기는 순간, 감탄했다. 쓰지 않았고 시지 않았고, 고소하면서 진했다. 캐나다에서는 블랙커피를 마신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쓴 맛을 싫어했는데, 페루의 커피는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앞으론 1일 2커피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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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메뉴를 훑고 있었는데, 이럴수가 모든 것이 스페인어다. 직원을 불러 설명을 부탁할까 하다가 그냥 메뉴 이름이 가장 긴 음식을 가르켰다. 이거, 우노(한개)!아직도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나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이였고,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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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아침을 살겸 큰 마트를 갔다. 과일이 무척이나 싸서 맘에 든다. 캐나다도 한국보다는 과일이 저렴한 편이지만내가 좋아하는 청포도는 워낙 가격이 있는지라 자주먹지 못했는데여긴 4000원 남짓이다. 와인을 살까 하다가 맥주를 골랐다. 집에와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을 깨끗히 지우고 노래를 틀고 야경을 보며 맥주를 한모금 마시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길가다 본 귀여운 라마 인형도 아니고, 오늘 본 바랑코의 풍경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들었던 흥 넘치는 음악도 아닌 고작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맥주, 야경, 좋은 노래가 내 완전한 행복을 만든다. 30시간을 날라온 이 곳에서 깨닫는다. 나의 행복의 조건은 참 단순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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