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08. 2024

오디가 익어가던 6월의 내 3평 정원

주택으로, 작은 정원이 있는 곳으로의 이사 결정은 많은 다양한 상상을 하게 했다.

아파트에서는 할 수 없는 노지 식물 기르기를 꿈꾸며 어떤 꽃, 어떤 나무를 심을지 구상해 보는 일은 이사도 하기 전에 충분히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집주인인 남동생이 조경을 해야 한다며 우리 정원에 어떤 나무를 심고 싶은지 물어왔다.

내 선택은 하얀 목련나무, 남편의 결정은 대추나무였다.

그 이유는 이전에도 밝힌 바가 있었지만 아파트 우리 집 작은 주방 창문 밖에 서있던 목련나무의 사계절의 변화를 켜보다가 그 나무에 내가 정이 들어서였고, 어린 시절 마당에 있던 큰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먹던 남편의 추억 때문이었다.


마침내 주택으로 이사를 다.

크를 내고, 대문을 달고, 출입로를 만들고 보니 작은 정원이 더 좁아졌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목련나무와 대추나무가 심어졌고, 뽕나무와 보리수나무가 뒤이어 내 정원에 옮겨졌고, 마지막으로 제법 큰 배롱나무가 한 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배롱나무는 2층 창을 가릴 정도로 커서 내 안락의자 앞쪽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목련나무는 하얀 예쁜 꽃과 넓고 큰 이파리를 보게 해 주었고, 보리수나무는 빨갛게 예쁜 달콤한 열매를 선물했다.


그리고 뽕나무.

왜 뽕나무였을까?


화훼농장에 구경을 갔다가 까만 오디가 달린 작은 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그 순간  어린 시절이 눈에서 머리로 선명하게 지나갔다.


대도시이긴 했지만 내가 살던 도시 외곽 동네는 나지막한 작은 산이 있었다. 친구들과 그 산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산에 뽕나무가 몇 그루 있었고, 손가락이 빨개지고, 입주위가 거뭇하게 물이 들도록 깔깔대며 달콤한 열매를 따서 먹던 재미있고 따뜻한 추억이 있다.

그 기억이 불현듯 스치면서 나는 어느새 뽕나무를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작은 뽕나무 한그루가 좁은 내 3평 정원의 한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


주택으로 이사한 지 1년이 지났다.

이사를 하고 3개월 만에 남편 발령지를 따라 인도에 가게 되었고, 작년 11월 초에 잠시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뽕나무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커다란 잎사귀가 누렇게 변해서 달려있는 모습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서 예쁘지가 않았다. 내 정원에 안 어울리는 수종을 괜히 심었다고 후회도하게했다.


해가 바뀌었고, 겨울을 인도에서 보낸 나는 4월 하순경에 한국에 다니러 오게 되었다.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 아파트를 나왔는데 인도의 아파트에서  봄을 지낼 수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내 집에 들어서는데 알록달록 철쭉들과 예쁜 수형의 목련 나무와 겨울을 이겨낸 분홍 패랭이들과 초록잎이 무성한 수국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정원 가운데 심어둔 뽕나무가 영 눈에 거슬렸다. 나무 모양도 예쁘지 않았고, 이파리들이 크기만 했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차장 쪽으로 옮겨 심고 싶었지만 키가 낮아서 주차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하는 수없이 그대로 두게 된 뽕나무였다.


5월이 되고, 6월이 되고 기온이 차츰 올라가면서 뽕나무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잎이 점점 커지면서 나무도 예뻐졌고, 무엇보다 연두색 귀여운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붉어지다가 어느새 새까만 오디가 작은 나무에 주렁주렁 달리고 있었다.


작은 꽃을 달고 있던 예뻤던 보리수나무는 병충해를 입어서 올해는 빨간 열매가 10개도 안 달렸지만, 기특하게도 뽕나무는 연두색 열매들이 잘 익어서 까만 오디를 자꾸자꾸 달고 있었다.


주방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마주하는 정원의 뽕나무는 6월 내내 재미있고, 신기하고, 맛있는 오디를 선물해 주었다. 손가락에 빨갛게 물이 들어도, 손톱밑이 까매져도 익은 오디를 하나씩 따서 먹는 재미는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맛있는 열매를 선물하던 뽕나무는 열매가 모두 떨어지고 나니까 넓고 큰 잎사귀를 가득 달고 가지가 계속 자라더니 시원한 그늘을 또다시 선물로 주고 있다.


6월을 보내면서 내 작은 정원에 심긴 예쁜 꽃들은 더위가 와서 거의 시들고 있지만 뽕나무는 외려 잎이 무성해지고 멋있는 모습이 되고 있다.


데크의 내 전용 암체어에 앉아서 내 정원을 올려다보면 여느 나무들보다 뽕나무가 지금은 가장 예쁘다. 이파리가 얼마가 큰지 해를 가려주고, 눈을 보호하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미운오리새끼'였던 내 정원의 뽕나무는 맛있는 오디와 예쁜 큰 잎사귀를 달고 멋진 '백조'가 되었다.


천대했던 뽕나무, 다시 잎이 누렇게 변하고, 앙상하고 초라한 가지만 남겨지겠지만, 내년에 다시 '백조'가 될 것을 믿으며 가을에 가지치기를 해 두고 인도에서 또 겨울을 보내고 올 생각이다.


한동안 나에게 한국의 6월은 오디가 익어가는 계절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오디가 한창 익어가던 6월의 내 3평 정원 ⬇️


맛있는 열매를 선물하던 6월의 뽕나무 ⬇️


오디가 익어가는 과정 ⬇️


오디를 따 먹는 재미 ⬇️


떨어진 오디는 민달팽이의 밥이 되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한낱 벌이 아니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