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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 국민의 의무였던가?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나는 운전을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운전 못하세요?"

"네. 못해요. 잘 못해요."


"운전을 왜 안 하세요?"

"운전이 크게 필요가 없더라고요"


"운전을 하면 얼마나 편한데, 이 좋은 걸 왜 안 해요?"

"전 걷고, 대중교통 타는 걸 더 좋아해요"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그 해 겨울방학에 운전면허증을 땄다. 오전에 필기, 오후에 실기, 하루 만에 모두 따서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지 35년이 되었다.

그런데 운전을 안 한다. 이제는 못한다. 소위말하는 35년 장롱면허 소유자다.


면허증을 받자마자 졸업을 했고, 서울에 취업이 돼서 상경, 당연히 차가 없었고, 서울 대중교통 노선을 익히느라 운전면허증은 간호사면허증과 함께 내가 소유한 국가면허증의 하나로만 의미가 있었다.

결혼을 했고, 지방 소도시에서 바로 연년생을 낳아 기르느라 혼자서는 외출도 힘든 상황에서 운전은 꿈도 못 꾸며 살았다. 대도시로 이사를 했고, 재취업을 알아보며 도로연수를 받을 즈음, 남편의 인도 주재원 발령, 운전기사를 필수처럼 고용해야 하는 나라에서 10년 이상을 살았고, 운전은 내게서 점점 먼 일이 되었다.


귀국을 하니까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기 되었고, 서울에 터를 잡고 사느라 다시, 서울의 지리와 대중교통 노선을 익히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운전은 영영 필요 없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운전을 잘하고, 좋은 차를 가진이들도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데, 굳이 운전 연수를 다시 받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잘한다.

달리기는 잘 못해도 걷기는 또래 중에 상위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정도로, 오래, 잘 걷는다. 잘 걷기도 할뿐더러, 그것을 즐긴다. 웬만해선 택시를 타는 일도 없다. 걷고,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다시 걷는 그 일을 즐긴다. 걸으며 주변 구경하는 것도 좋고, 버스 차창 밖 구경도 재미있다. 전철 안의 사람 구경은 더 재미있다. 그래서 걷는 일도, 대중교통 타는 일도 전혀 번거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작은 도시에 살았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운전을 시작했겠지만, 서울 근교에, 전철역 도보 거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운전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며 잘 살고 있다. 불편한 적도, 아쉬움도 없다.


"운전 못하세요?"

"운전 안 하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운전, 이 좋은 걸 왜 안 하세요?"

"지금이라도 연수받으시죠!"


자동화된 차가 나오면서 운전이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 아니게 된 세상이 되었지만, 운전을 안 하는 편을 선택했다는 데 왜 운전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못하거나, 안 하거나, 개인의 선택인데, 반복적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자동차 운전이 국민의 의무는 아닐진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을 때면 상당히 무례함을 느낀다.

개인의 선택이 공공의 피해와 무관하다면, 본인에게 좋은 선택일지라도 타인에게 강요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반복적인 권유 또한 강요이다. 그 강요에는 시시한 우월감마저 보인다. 운전이 뭐라고.


운전을 안 하는 내 선택이 잘못된 일인 양, 마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인 양 취급받는 경험이 최근에 잦았다.

그 일을 계기로 과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는지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았던 일을 반복적으로 타인에게 권유를 한 일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 기억을 못 한다고 없는 일이 되지 않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내 무례에 대해 지금이라도 깊이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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