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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회상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가을비가 이미 젖은 공기를 뚫으며 요란하다.

그 비는 귀에서 소리로 발랄하게 들리는데

그 소리는 심장에서 기억으로 무겁게 차오른다.



빗소리에

웅크리고 앉은 꽃밭에서, 젖은 런닝에 휘감긴

울 아부지 마른 등뼈가 보이고


빗소리에

고단한 어깨를 한, 양손 무겁게 제수 장을 봐오는

울 엄마의 젖은 신발이 보이고


빗소리에

간질간질 발등에 튀는 빗물이 재미있는

툇마루 끝에 앉은 단발머리 중학생 내가 보인다.



빗소리는 귀안으로 흘러들어

내 심장에 끝끝내 다다라서

심장 가득 빗물이 고이고

그 빗물은 마침내 넘쳐서

눈물로 흐른다.


예순을 바라보는 늦둥이 막내딸은

엄마 아부지가 보고 싶어서

심장에 쌓인 빗물이 무거워서

서러운 눈물로 쏟아낸다.





작은 정원에 비가 내린다.

차소리 하나 안 들리는 정원이 빗소리로 가득 차면,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과 꽃밭이 보이고 들린다.

비를 맞으며 꽃밭 식물을 돌보는 여윈 아버지의 뒷모습, 멀리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는 비에 젖은 엄마, 그리고 툇마루에 앉아서 그 모든 풍경을 바라보는 어린 나.

비는 소리로 들리는데, 내 마음엔 장면으로 보인다.

우리 집 작은 꽃밭과 흙마당이.

그리운 울 엄마와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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