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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Dec 25. 2022

서른 되기 일주일 전

이십 대가 일주일 남은 시점


맥북을 샀다. 지름신이 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어제 회사 동료와 '노트북은 맥북이 제일 좋더라'는 이야기를 했던 탓이다. 퇴근하고는 연휴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게임하고 놀기 바빴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퍼뜩 '맥북이나 살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엄청 자주 쇼핑을 하지는 않으나, 한 번 꽂히면 반드시 사고 마는 성향이 있다. 가방도, 에어랩도 아이패드도 모두 그렇게 구매했다. 그래도 주기는 꽤 길다 삼 개월 정도..? 아무튼 꽂히면 어지간히 부정적인 연상이 되지 않는 한 산다. 어차피 살거면 빨리 사서 더 오래 쓰는게 좋다. 물론 반쯤은 합리화다.


맥북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쓰는 노트북도 있었고, 아이패드와 스마트키보드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 나의 핑계는 '마지막 20대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올해 스물 아홉, 일주일 뒤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다. (물론 내년부터 만나이로 바뀐다고 하지만 내 체감 상 한동안은 서른일 것이다) 스물 아홉이 된 일월 며칠 뒤숭숭했던 게 엊그제.. 같지는 않지만, 다사다난한 일 년이 지나고 이제 정말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올 해는 크리스마스도 신년도 다 주말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유럽에 나왔더니 구정이고 추석이고 다 사라져 9월부터 12월까지 공휴일은 딱 이틀이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다. 내 생전 이렇게 공휴일 없는 나라는 처음 본다. 게다가 대체 공휴일도 없다. 하하. 정말 근면 성실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놈팽이가 따로 없다. 반성해야 한다.



나의 노트북 변천사는 무려 15년 전인 2007-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전자 기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어린 나이부터 노트북을 접할 수 있었다. ASUS(?)에서 나온 하얀색 노트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집에는 내 전용 데스크탑이 따로 있었고, 게임을 좋아했던 나는 주로 데스크탑 컴퓨터를 썼다. 결국 노트북은 친구들과 숙제할 때 가끔 사용하고 거의 쓰지 않은 채 어느순간 사라져 있었다.


두 번째 노트북은 2013년 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았던 hp노트북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나는 아주 고사양의 (지금 나오는 게임도 대부분 돌아갈 정도의 고사양의) 노트북을 받았다. 200만원 상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호주로 넘어오고 이 년쯤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맥북 프로를 썼다. (이 또한 200만원 상당이었을 것이다) 나는 호주에 살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맥북이 (사실 어디든..) 제일 흔했다. 맥북은 좋았다. 다만 게임을 좋아하던 내게는 윈도우 게임을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 2021년, 본격적으로 한국에 살기 시작한 나는 공인인증서가 되지 않는 불편함을 느꼈고, 처음으로 한국에서 만든 노트북을 써보기 시작했다. 2021년 말쯤, LG Gram을 샀다.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노트북이었다. (이때쯤에는 더이상 엄카찬스가 되지 않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180만원 상당이었고, 뭐 지금까지 썼던 노트북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반 년 뒤, 나는 LG Gram을 팔고 아이패드 프로를 샀다. 알고 있다. 금전적으로는 하나도 득본 게 없다. 아직 워런티도 남아 있었고, 이미 새 상품을 산 시점에 중고가로 떨어지며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다만.. 그 노트북은 너무 컸고, 잔고장이 많았다. 게다가 그동안 못하던 게임을 맘껏할 수 있다면 좋아하던 나였지만, 정작 게임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2-job을 하며 9시부터 6시까지, 다시 7시부터 11시까지 일하고 있었고, 주말에는 출판을 위한 글을 썼다. 게임할 시간은 정말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워낙 바쁘게 살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어서 인지 게임을 해도 어릴 때 만큼 재밌지 않았다. 특히 컴퓨터 게임이 그랬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는 여전히 할만하다) 그러던 차에 다시 외국에서 살게 되었고, 그래서 그냥 Apple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만, 아이패드라는게 문제였다. 아니, 아이패드는 좋았다. 확실히 편하고, 성능도 좋고, 카메라도 나쁘지 않고, 여러모로 유용하고 튼튼하고.. 다만 노트북 대용이 될 거라 생각한 점은 큰 오산이었다. 

요즘 애들(흔히 MZ세대라고 하는)은 노트북 대신 아이패드를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아이패드가 많이 발전했나보다 생각했다. 게다가 스마트 키보드가 있어 사실 완벽한 대용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쟁이인 내게는 문제가 많았다.


우선 어플이 문제였다. 어플은 인터넷 사이트로 접속했을 때 만큼 편하지 않다. 특히 스마트 키보드와의 호환에 문제가 좀 있었다. 키보드 방향키로 윗줄 아랫줄 이동이 불가능 하다는 정말 자잘하지만 반복되면 짜증이 유발되는 그런 자잘한 문제들 말이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이나 쓸까 했던 지난 날을 합리화 해본다.)

특히 가장 자주 겪었던 문제는 자잘한 설정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 할 때였다.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야 하는데 자꾸 모바일 전용 사이트로 연동되면서 나를 끊임없이 방해했고, 해외에서 은행계정에 접속할 때에는 이 때문에 비밀번호 찾기가 불가했다. 


공인 인증서도 사용할 수 없었고, 정말 여러모로. 컴퓨터의 대체가 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었다. 사실 한국이라면 크게 문제가 안되었을 수 있다. 컴퓨터가 정 필요하면 PC방이 어디든 있으니까. (그리고 PC방에서 먹는 간식을 꿀맛이니까) 하지만 여기는 PC방을 찾기 어려운 나라다. 이럴 때에 내 노트북이 없는건 너무나 치명적이다. 물론 회사에서 제공하는 노트북이 있지만 애초에 지급받을 때 부터 'personel use'가 안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데다, 회사 데이터 관리 담당은 같은 인터넷에 접속만 해도 내 컴퓨터를 샅샅이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주 부담스럽다. 


그래서 언젠가는 사야지 하고 (사실 퇴사하면서 살 생각이었다) 생각하며 아침부터 맥북을 검색하는데.. 내가 찾아보지 않는 사이 M1이라는 혁명이 있었고, M2가 출시되었지만 M1에 비해 올라간 가격만큼의 성능을 내지 못한다는 리뷰가 많았다. 

계속 보다 보니, 결론은 최근 (아마도 원가 절감을 위해) 맥북 에어에 들어가는 어떤 부품을 바꾸었고, 그 때문에 고용량의 파일을 전송하거나 여러개의 창을 띄어놓고 편집 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꽤 무거운 작업을 하게 되면 M1에 비해 발열이 심하고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기본형을 살거면 2020년 말에 출시한 M1의 맥북에어가 가성비가 가장 좋다는 리뷰였다.

사실 늘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빠가 골라서 사줄 때는 몰랐는데, 아무 생각없이 디자인과 홍보 영상만 보고 노트북을 쓰다보니 알게 되었다. 모든 노트북이 다 제 값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내가 약 5-6년동안 맥북을 쓰면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가장 좋았던 점을 꼽자면, 잔고장이 없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기계를 아주 소중히 다루는 편이 전혀 아니라서, 박스를 보관하지도 않고, 파우치에 넣거나 커버를 씌우지도 않는데다, 자주 떨어뜨리기까지 하는 편인데, 당시 내가 쓰던 맥북 프로는 이 모든 수난에도 잔고장이나 스크린 깨짐하나 없이 (물론 많이 떨어뜨려 모서리에 흠집은 많았음) 잘 버텨주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5-6년이나 썼는데도 배터리가 빨리 닳거나 속도가 무지 느려지거나 하는 문제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다른 최신형 노트북으로 바꾸고 나서 다시 맥북 에어를 산 지금은 '그때 팔지 말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에어와 프로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쓰던 게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M1이라는 혁명(?)이 한번은 있었으니 앞으로 나올 노트북들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소비였던 것 같다. 

(이 와중에 애플케어는 200유로 더 달라 그래서 필요없다 하고 집에오면서 이미 깨져있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이렇게 여자저차 글을 써 보지만, 사실 아이패드만으로 살아가는 '요즘 애들'은 되지 못했다는 생각과, 지름신의 강림으로 마우스까지 1200유로를 지르고 온 소감문이다. 괜찮다. 나는 이미 돈 쓰기 합리화의 최적화 된 스물 아홉이니까. 이십대의 마지막을 자축하는 선물이라 이름 붙이면 어지간한 건 다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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