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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an 19. 2023

연락하지 마, 짜증 나니까.

타인의 선을 넘지 마시오.


언제부터인가 짜증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휴일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술만 마시면 연락이 왔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연락이 오는 것 만으로 짜증이 났다.


'술 마시고 연락하지 마라'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씹었다. 우선 그게 짜증 난다. 술 마시고 연락한다는 것. 편하게 푸념할 상대가 필요한 건지 뭔지 모르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내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다. 그래서 이따금 밤에 오는 연락은 씹었다.


그랬더니 평일에 연락이 왔다.


'야, 나 오늘은 술 안 마셨어.'


아. 짜증 난다. 찍접대는 건 아니다. 어차피 그와 나는 하루 동안 비행기를 타도 만날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 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건 삼 년 전이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정말 한 한 번이나 '살아있냐?'는 식의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때와 장소가 맞아, 몇 년 만에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이왕 한국에 가는 거 휴가를 맞춰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고 오려고 스케줄을 조정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근데 그때부터 그는 자꾸 내게 이상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요구가 아니라 서운하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일본에는 얼마나 가느냐고 묻더니, 자기는 고작 하루 보면서 일본에 있는 친구들은 나흘이나 보냐며 서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한 달 내내, 연락할 때마다 그런 말을 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지만 점점 불편해졌다.


아니, 내가 누구랑 시간을 보내고 누굴 더 많이 만나든 내 마음이지. 자꾸 사람 불편하게 이딴 식으로 연락하는 거야? 스케줄을 조정한 건 나름 좋은 친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이토록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은 친구일리 없다.


이런 사람은 친구든 이성이든 연인이든 필요 없다.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이 화를 내는데, 가까운 사람을 타인으로 인식하지 못해서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가족에게 가장 많은 화를 낸다고. 근데 내가 얘랑 그렇게 가까웠나? 나는 그를 통제하려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스케줄을 조정한 후, 그는 나와 이야기했던 걸 까먹고 다른 날 휴가를 잡았고, 나는 '아 뭐야-, 잊었어?'라고 웃으며 구박한 뒤 넘어갔다. 다른 날 잡고 싶으면 다른 날 잡는 거지. 사람이 살면서 잊어버릴 수도 있고, 다른 중요한 일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그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하다며 찡찡댈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얘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게다가 요즘 들어 정말 쓸데없는 연락이 너무 잦다. 그게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술 마시면 연락하는 게 너무 싫었다.



타인으로서의 거리는 중요하다.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타인은 흘러가게 두고,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들이 하고픈 대로 둔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가까운 사람보다 남이 편하다.


하지만 사실 이 '남'이라는 거리는 생각보다 많은 관계에 적용된다. 친구, 연인, 가족까지 모두에게 해당한다. 우리는 모두 오롯이 '나'와 '남'으로 구분되고, 그렇기에 누구의 통제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잔소리를 들으면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꼭 해야만 하는 정해진 관례처럼 날을 챙겨 찾아가야 하는 것도,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줘야 하는 것도, 호의에서 비롯되어야 할 모든 일들은 의무와 강제가 되는 순간 스트레스로 바뀌고 만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남을 강제할 권리가 없고, 남도 나를 강제할 권리가 없다. 감정에 호소하며 행동을 강제하거나,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사람이 싫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분명 이유가 있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편하고 즐거운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교묘하게 '친분'이나 '동정'같은 어떤 가면을 쓰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싫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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