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든이 다 된 아버지가 섬망 중에 '엄마'라는 말을 간절하게 외치며 몸부림쳤다.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모로 누운 아버지를 부둥켜 안으며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아버지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왜 우느냐 묻는다. 아버지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의 눈물은 나를 더 흐느끼게 만들고 아버지는 여윈 손을 휘저어 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5분 전까지도 나는 새우깡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단 말이다. 나는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그게 어쩌면 의식있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거의 3주 동안 음식을 거부하던 아버지를 아산병원에 모셨을 때 아버지는 이미 기력이 쇠해져서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졌고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산병원에 1주일 입원하는 동안 그래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시고 식사를 스스로 하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항암을 포기한 상태라 병원에서는 호스피스 병원을 소개했고,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호스피스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울에 몇 없는 호스피스 병원중 집에서 가까운 곳이 하나 있었고, 마침 빈 병상이 하나 나왔고, 1주일 입원 후에는 1인실로 옮길 수 있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신 이후 아버지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호스피스. 사람의 생을 더이상 살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어갈 수 있게 하는 병원.
이제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산소를 공급하고, 섬망을 잠재우기 위한 진정제와 수면제가 투입되고, 이제는 밤잠을 방해하는 가래를 뽑아내기 위해 긴 호스를 목구멍에 꽂는다.
아침 회진을 도는 의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판사의 판결처럼 느껴진다. 아직 괜찮으시네요. 아직. 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때면 마지막이 임박했다는 말일까. 2인실을 함께 쓰던 할아버지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그분은 이미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였고, 그러고도 2주는 버티셨다. 우리 아빠는 말도 하고 의식도 있고 식사도 하셨는데 그래도 그보다는 훨씬 오래 버티지 않을까, 얄팍한 셈을 굴려본다. 조금만 더. 6개월만 더. 두 달만 더. 그냥 이 상태만이라도. 아버지의 손을 매일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을 때가 자꾸 상상되어 슬픔은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