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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Sep 19. 2023

안녕, 밴프. 안녕, 언니

캐나다 한 달 살기 5주차

 밴프에 며칠 가을같은 날씨가 지속되었다가 다시 여름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돌아왔다. 여름이 벌써 끝난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캐나다에 온 지도 38일이 지났다. 이제 나는 떠날 때가 되었다. 집 오는 길이 익숙해지고 어느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은 너무 짧다. 하지만 J가 습관적으로 말하듯이, 아쉬워야 다시 찾는 법이다.


 어딜가나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둘 사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내게는 우리 언니가 그런 존재였다. 나보다 3살 많은 우리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에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에 합격했다고 했다. 진짜로 캐나다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언니가 그 소식을 전한 날이 기억이 난다.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했지만 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짜로 가는 거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어렸을 때 많이 싸우며 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언니는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첫째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내 고등학교 졸업식, 첫 밴드 공연도 참석해준 게 언니다. 집에 와서 기다리면 항상 언니가 복도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와 빠른 속도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곤 했다.


 그랬던 언니가 어느새 거의 2년째 한국에서 15시간 떨어진 캐나다에 머물고 있다. 나는 아직도 복도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언니가 나 왔어- 하고 들어올 것만 같다. 하지만 언니는 캐나다에 있다.


 꼭 애석하다는 것은 아니다. 밴프는 정말 멋지고 살기 좋은 곳이고, 언니가 꿈을 펼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언니 덕분에 밴프에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되어서 행복했다. 밴프의 여름은, 그늘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스하며 호수가 찬란하다. 로키 산맥의 건강한 숨을 들이마시면 속이 정화되는 것만 같다. 상쾌한 공기 머금은 밴프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내게 밴프에 있는 동안 제일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건 언니와 함께했다는 것이다. 언니가 물었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호수가에서 피크닉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언니와 함께 호수가에서 피크닉한 것이 제일 좋았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는 데에는 함께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이 사실이다. 객지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함께하며 옆에서 꾸준히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 말이다. 그게 설령 자기 자신을 벗으로 삼는 것이든, 오랜 친구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과 함께하며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을 존중하다 보면 여행도 더 즐거워진다. 그 사람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걸 기억하면 여행이 편해진다.


 내게 이번 밴프 여행은 언니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언니와 시간을 보내며 언니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고 나와 비슷한 점, 다른 점도 알 수 있었다. 인생에 몇 번 없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캐나다 마지막 날 캘거리의 떡볶이집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던 것이다.


 언니랑 헤어지고 훌쩍거리며 탑승한 우버에서는 파키스탄에서 온 사무엘이 나를 달래주었다. 사무엘은 53살인데도 아직 공항에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할 때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운다고 한다. 이별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게 인생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뿌리내리는 언니를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밴프의 아름다운 계절 속에서 단단하고 푸릇하기를 빌어본다. 안녕, 밴프. 안녕, 언니. 건강하게 있어.




-2023년 7월 12일~8월 19일 / 5주간의 캐나다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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