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픽사베이
모임에서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손님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려고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신을 때부터 이게 내 신발이 맞나 싶었지만 남은 신발이 그것밖에 없었고, 반신반의하며 발을 넣었다. 모양과 색깔이 내 신발과 아주 흡사했다. 그런데 신었을 때 내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크기도 비슷했지만 그 느낌이 아주 달랐다. 그때 이 속담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하루종일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인디언 속담-
어색하고 불편하면서 신발 주인이 궁금해지는 묘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 신발을 신고 그냥 갔을까? 그날은 다른 신발이 없어서 식당의 슬리퍼를 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 칠 뒤에 신발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식당으로 갔다. 그날 정신이 없어서 잘 못 신고 갔다고 한다. 신발 주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가끔 그때 일이 생각날 때 현관 앞에 놓인 가족들의 신발에 발을 넣어 본다. 앙증맞던 아기의 발이 어느덧 내 발이 헐렁거릴 정도로 커진 둘째 아이의 운동화. 그 옆으로 구두굽이 닳은 남편 신발, 주로 중고로 사는 큰 아이의 신발이 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신발이 현관을 채운다.
20대 시절에는 신발을 사도 발에 잘 맞지 않았다. 구두를 막 신기 시작했는데 발 사이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게마다 신발 사이즈가 조금씩 달랐다. 신어보고 사도 막상 걷다 보면 늘어날 줄 알았지만 발을 조여서 불편했다. 어떤 때는 너무 늘어나 헐렁거렸다. 저렴한 보세 신발을 신던 나에게 언니가 월급을 탔다며 사서 보내준 신발은 무지개처럼 곱고 예뻤다. 그런데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집에서 독립한 언니는 연락이 뜸했는데 내 신체 사이즈를 잘 몰랐던 거다. 거의 신지는 못했지만 고이 간직했다. 무지개 신발을 볼 때마다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졌다.
평생교육원 수업 첫 발표가 있었다.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여전히 떨렸다. 재밌고 즐겁게 긴장되는 분위기를 풀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발표 자료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반응을 살피는데 조금 웃어주면 기운이 났다가 그렇지 않으면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앞에 서는 사람의 마음이 실감 나게 공감됐다. 교수님들이 강의할 때, 다른 학생이 발표할 때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고 공감해 줘야겠다. 남의 입장은 생각으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 자리에 서보아야만 알 수 있다. 그 누구의 사정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오늘도 그렇게 생각하며 함부로 던진 말들을 주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