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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24. 2023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책리뷰



책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출판사 : 창비



책모임에서 2023년 첫 번째 선정 도서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선택했다.

작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을 여러 사람이 추천했다. 위트 있고 가볍게 읽히는 듯하면서 읽고 나면 뭉클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옆구리에 초록빛 책을 한 권씩 끼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한자리에 모였다.

누군가 '항꾼에' 가자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책을 읽었어도 눈여겨보지 않은 단어였다.

마음에 깊숙이 와닿는 문장들이, 단어가, 느낌이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지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것은 문명해 보였다.


"항꾼에 또 올라네." p49

항꾼에=같이 (전라도 사투리)


'빨치산'을 어디에 있는 산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많이 들어온 말이다. 익숙한 단어이지만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들의 삶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빨치산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의 게통을 통 들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흔히 조선 인민 유격대라고 부르며, 남부군이나 공비, 공산 게릴라라는 표현도 사용되었다.
-출처 디지털순창문화대전-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황당하고 기막힌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뭔가 우스운 미스터리가 일어날 것 같았지만 이 이야기는 웃픈 이야기다. 미스터리라면 아버지와 딸은 왜 그렇게 어린 시절의 정다움을 잊고 대면대면하게 살게 되었을까이다.  위트와 유머에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감히 크게 웃어넘길 수 없는 진지한 소설이다. 웃는데 눈이 촉촉해지는 그런 이야기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창비에 연재할 당시 이 책의 제목은 '이웃집 혁명전사'였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확 와닿는 제목이다. 책 제목처럼 아버지는 마을에서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발 벗고 나서서 앞장서는 이웃과 잘 살고 싶은 오지랖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전직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진지하고 남의 일에 '그럴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남을 돕는 오지랖이 넓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그것도 황당하게 죽고 난 후 3일 동안 장례식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3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지난날의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전쟁과 분단, 해방을 지나는 굴곡진 현대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 때문에 발길을 끊은 작은 아버지, 서로 다른 이념을 따랐던 사람들, 딸 대신 아들 노릇을 했다는 청년, 동네사람과 친척들을 만나며 소원해졌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인연들을 만나며, 과거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와의 관계,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장 가까웠고 좋아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거리를 만들어 버렸고, 아이에서 소녀가 된 딸도, 그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도 어색한 마음뿐이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한평생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살아온 딸은 이제야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3일간의 장례식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고향을 등지고 살아왔던 아리가 추억 속에서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아껴주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아버지와의 화해의 손을 내미는 시간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해를 넘어 아버지와의 깊은 마음을 나눈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서먹하고 멀리 하고만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며,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해 발길을 두지 않았던 작은 아버지도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람으로 같이 다 잘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삶은 어쩌면 사회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순갱은 사람이 아니다냐? ~뿔갱이든 퍼랭이든 노상 얼굴 보고 살았는데 총이 겨놔지가니."

(p136-137)


이념에 대한 신념을 가졌던 사람들은 아끼는 사람들과 더 잘 살고 싶었던 마음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날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섬세하고 탄탄한 문장들이 촘촘하게 아직까지도 극복되지 않는 우리의 대립된 역사 속 사람들을 구례 속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심각하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쓰고 있다.



"오죽하면,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찬바람이 불면서  부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름다운 날의 결혼 소식과 함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어제의 미래였던  오늘을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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