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 부쳐
대만에 거주할 때 '서울서점인대회' 소식을 처음 접했다. 2017년, 제2회를 맞이한다는 기사.
"서울서점주간 - 동네 서점에서 만나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띄었다. 특히 ‘동네 서점에서 만나요!’라는 정겨운 말.
#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는 여러 가지 아날로그 사물들(의 반격)이 등장한다.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등. 특히 2부는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이라는 제목으로 인쇄물, 오프라인 매장, 일(로봇을 대체한 노동자), 학교, 실리콘밸리의 유의미한 아날로그적 변화와 그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제6장 ‘오프라인 매장: 알고리즘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은 오프라인 서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995년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등장한 이후 서점은 레코드점과 더불어 가장 먼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공격을 받았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만 수천 개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뉴욕에 있을 때 즐겨 찾았던 대형 서점 ‘반스 앤드 노블(Barnes and Noble)’은 다행히 아직 건재한다. 하지만 매장 숫자를 20퍼센트 가량 줄였다 하니 ‘서점’이라는 단어는 (저자의 말마따나) 이제 ‘쇠퇴’, ‘죽음’, ‘종말’, ‘수명이 다한’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미국서점연합ABA에 가입한 서점의 숫자는 2009년에 1650개로 최저점을 찍었다가(1990년대에는 4000여 개에 달했다) 새로 가입하는 서점들이 눈에 띄게 꾸준히 증가하면서 2014년에는 2227개가 되었다. 그 성장세는 둔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록 ABA가 미국에 있는 상당 수의 독립 서점들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기는 해도 독립 서점들이 전부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서점 숫자는 1만 3000개 정도로 추산된다.
-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오프라인 매장-알고리즘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 중
남의 나라 일이지만 미묘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게다가 전체 서점 수의 증가에 ‘독립 서점’이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감지케 한다. 이 또한 트렌드이고 미국발 트렌드가 다른 나라에 끼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므로.
아날로그 인쇄물의 핵심은 ‘책’이다. 그리고 그 책을 경험하고 구매하는 창구는 ‘서점’이다. 특히 오프라인 서점의 부침과 새로운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아마존 같은 대형 온라인 채널로 인해 타격을 입은 오프라인 서점들이 아날로그라는 인식상의 약점을 강점으로 변환시키는 최근의 사례들은 고무적이다. 손님들이 쉽게 들어설 수 있는 아늑하고 멋진 공간, 책을 잘 아는 친절한 직원과 잘 고른 책들이 있는 개성 있는 독립 서점들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시인 김이듬이 일산에 독립 서점을 낸 것을 비롯하여 점점 늘어가는 독립 서점들이 시장에 안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온라인 서점이 제공할 수 없는 것, 예컨대 물리적 매장, 진짜 점원(책을 좋아하고, 트렌드를 잘 알며,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아줄 수 있는), 선별된 책들, 기타 이벤트(독서 모임, 북클럽, 작가 초청 이벤트) 등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으로 차별화되는 특별한 공간.
# 다른 나라 서점에서
- 호주 시드니 서점의 손글씨 카드
오래 전,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서점 몇 곳이 떠올랐다. 13년 전인가, 호주의 시드니였을 것이다. 숙소 근처에 은은한 조명과 부드러운 나무 서가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아늑한 서점이 눈에 띄었다. 그곳의 독특한 점은 서가의 선반을 빽빽하게 책으로 채우지 않고 드문드문 여유 있게 책 표지를 앞으로 세워놓는 진열 방식에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렇게 책 표지를 드러낸 책 아래(선반)에 서점 주인(혹은 점원)이 손글씨로 반듯하게 적은 소개 카드를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시선이 가지 않을래야 가지 않을 수 없다. 북마스터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무언가 친절하게 소개 받고 정성껏 추천 받은 느낌. 천천히 둘러보며 오래 머물고 싶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프로다운(책을 좋아하고 추천하는) 면모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정겨움은 덤이었고.
- 노르웨이 베르겐 서점의 공간 감각
7년 전쯤 노르웨이에서 만난 서점도 그랬다. 마치 북유럽 유명 디자이너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파격적인 가구 배치(세련된 일인용 소파와 멋진 스탠드 조명)가 절로 그곳에 앉아 예술 서적을 뒤적이고 싶게 만들었다.
- 영국 런던 서점의 책 추천하는 직원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서점 자체라기보다 서점에서 만난 직원이었다. 5년 전 영국의 워터스톤스(Waterstones)에서 있었던 일. 영국을 대표하는 대형 체인 서점인 만큼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창 셜록 홈즈에 빠져 있던 아이를 위해 코난 도일 섹션을 기웃거리다가 핸드폰 크기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펭귄북 시리즈가 진열대에 소담스럽게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무지 지나칠 수 없어 이 책 저 책 신나게 담아놓고 보니 여행 가방이 부담되었다. 딱 다섯 권만 사자 싶어 신중히 고르고 골라 계산대에 갔더니 (계산대는 진열대 바로 옆에 있었다) 중년의 갈색 머리 직원이 (나를 지켜보았는지) 웃으며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책(내가 고른 책)을 시간 들여 고른 걸 보니 분명 이 책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이 책(다른 책을 가리키며)도 추천합니다.”
# 핸드셀링의 미학
경험을 전달하는 일이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이자 온라인 매장의 약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의 물리적 공간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와 특별한 경험은 중요하다.
책에 소개된 뉴욕의 한 서점 스트랜드(Strand). 1927년 설립된 이래, 높은 서가와 삐걱대는 나무 바닥, 3층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독특한 직원들 때문에 뉴욕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유명한 서점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서점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수십 년간 무수한 어려움과 고비를 넘겨왔고 이제 ‘유서 깊은 서점의 아날로그적 매력을 희석시키지 말고 오히려 강조한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브루클린의 서점 그린라이트(Greenlight)도 소개된다. 다른 서점에서 이벤트 일을 담당했던 제시카 바뉼로와 출판 일을 하고 있는 레베카 피팅이 함께 연 작은 서점이다. 바뉼로와 피팅은 아마존과 동시대에 책을 판매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알고 있지만, 또한 서점이 전자상거래와 구분되는 장점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들이 파는 방법은 ‘핸드셀링 hand-selling’ 문화에 있다.
그곳은 아늑하고 친밀한 매장으로, 벽 전체를 감싸는 서가 때문에 매장 전체가 마치 책을 싣고 항구로 들어온 선박처럼 보였다. 핸드셀링이란 서점업계의 용어로, 쉽게 말하면 서점 직원이 손님이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 손님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이는 손님의 보디랭귀지를 읽고, 시선을 맞추고, 취향을 묻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책을 권하는, 가장 기초적인 대인관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아마존은 핸드셀링을 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은 독자가 전에 읽었던 책들과 (그 책들을 읽었던) 다른 독자가 샀던 책들에 근거해 해당 독자가 읽고 싶어 할 가능성에 가중치를 두고 계산을 하여 책 제목을 추천한다.
- 같은 책, ‘점원이 추천하는 책’ 중에서
아하, 내가 영국의 서점에서 경험한 그 독특하고 유쾌한 경험은 바로 이 ‘핸드셀링’에 있었군.
“핸드셀링은 독립 서점들이 가장 잘하는 일들 중 하나지요. 핸드셀링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손에 책을 쥐여주면서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아요. 아마 당신 마음에도 들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일어나니까요. ‘딱 맞는 책’을 권하기보다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죠.” (바뉼로의 말)
나는 핸드셀링,이라는 말에 기묘한 매력을 느낀다. “핸드셀링을 통한 책 판매는 책을 사라는 강요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아내는 일이고,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알고리즘으로 변환되지 않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선택지가 무한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쇼핑을 하게 되면 선택지가 제한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선택의 심리학 The Paradox of Choice>의 저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에 따르면, 끝없는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사람들은 무력해지다 못해 두려움을 품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마존에서 느끼는 감정도 그런 것이다. (같은 책, 같은 장)
실제로 그렇다. 너무 많은 상품의 진열 앞에서 나는 질리고 만다. 그것은 뮤지엄도 마찬가지다. 뉴욕에 머물 때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보다는 휘트니 뮤지엄(Whiteny Museum)이나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서울서점주간이 올해로 몇 번째일까. ‘동네 서점 르네상스’ 운운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점점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확대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소규모 서점이든 중대형 서점이든 오프라인 매장에서 핸드셀링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동네 서점에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