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책, 한 입 콘텐츠

장은수의 글에 부쳐


작년 초였던가. 출판사를 운영하는 K 시인이 새해엔 어떤 책을 내야 할까 고민하는 듯했다. 좋은 책도 좋은 책이지만 출판사의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 대중적인 책을 고려하는 눈치였다.


평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섹션을 무심히 지나치던 내가, 보기 좋게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 몇 권을 뽑아 후르륵 훑어봐야겠단 생각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K 시인에게 건넨 말도 있고 하여. 요즘 대중적인 책이라면 대개 심리 쪽을 건드리는 것 같다고, 치유와 위안에 방점을 찍은 감성 에세이 아니면 말랑말랑한 인문/과학 에세이가 계속되는 추세인 것 같다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일단 서너 권만 집어들어 살펴보았다. 간단한 인상만 후다닥 메모한다는 게 뜻하지 않은 한 줄 평으로 남았다. 예컨대, 어느 유명 연예인의 에세이집을 보고는 "XX에서 이 책을 출간했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라고 적었고, 만화 캐릭터를 앞세운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에 대해선 "이렇게 느슨하게 만들어도 괜찮을 걸까"라고 적었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도 아닌 만화 장면 하나에 문장 한두 줄. 그 두어 줄이 충분히 감화력 있는 것이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흔하고 표면적인 말들. 아포리즘을 가장한 깃털 같고 사탕 같은 문장들에 나는 혀를 찼다. 이런 책들이 잘 팔린다 이거지. 어릴 때 출판사 사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기 마련인데...... 그 미련이 아름다움보다는 씁쓸함 쪽으로 기우는 석연찮은 감정. 내가 K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 그가 민음사에 몸 담고 있던 시절부터 그의 글을 주목했던 것 같다. 한동안 그가 SNS에 올리는 글들을 살펴 읽었다. 자칭 읽기 중독자.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인(이제는 출판평론가이기도 한) 그의 글은 예리하고 명료한 관점을 전달한다. 해외로 이주하면서 한동안 그의 소셜 메시지들을 읽지 못하다가(공산국가에선 SNS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가 쓴 <출판의 미래>(2016)를 읽었다.


<출판의 미래>는 "독서 인구 감소, 긴 텍스트를 싫어하는 독자, 스마트폰이 종이책보다 친숙한 독자들을 위해 책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그리고 출판사는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미래 출판의 전략을 10가지 키워드로 제시한 책이다. 내 책 내는 법, 같은 류의 책이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은 보았어도 출판의 미래를 생각하는 책은 읽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터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


그런 그가 이번엔 작심하고 출판계의 최근 트렌드인 '한 입 콘텐츠'를 비판한다. 신문 1면을 통째로 할애한 글의 주제는 '넓고 얕은 지식의 한계'이다. '하루에 한 주제, 지식 하나에 한쪽'과 같이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책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쪽 지식'의 주요 독자는 30-40대 직장인. 여성 독자가 60%. 이 책들이 읽히는 이유를 하나로 정리하자면 '읽고 나면 지식인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것. 정보 과잉에 빠진 요즘 사람들의 뇌는 집중력이 짧아도 수용할 수 있는 정리된 정보를 찾는다.


읽기를 수동적 소비로 만드는 깊이의 실종이 문제다. (...) 한쪽에 지식을 압축한 잘 조직된 편집 기술은 멋진 일이나, 독자의 산만한 머릿속에 또다시 정보를 밀어 넣은 것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한쪽 지식'은 정보 과잉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집중력 자체를 생성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몰입을 통해서 인간을 책 자체로 변화시키는 독서만이 산만한 뇌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말한다. 우리한테는 '깊이 읽기'가 필요하다.

- 장은수, '한 입 콘텐츠는 산만한 뇌를 진정시키지 못한다' 중에서


베스트셀러 코너나 신간 평대를 지나칠 때마다 마뜩잖은 기분을 불러일으켰던 눈에 익은 책들이 장은수에 의해 다수 호명된다. 서사와 논리로 독자를 사로잡는 책이 아니라, 점점 더 토막글로 분할되어가는 소위 '잘 팔리는' 책들이다. 그의 냉정한 마지막 세 문장은 후련하기까지 하다.


'한 입 콘텐츠' 시대의 독자에 맞추어 책은 진화 중이다.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방식으로. 서사를 잃으면 몰입도 없고, 몰입이 없으면 책과 독자가 하나가 되는 일도 없다. 이것은 혹시 책의 자살이 아닐까.


그의 비판적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구석은 왜일까. 요즘 브런치에서 소비되는 글의 형태가 이 '한 입 콘텐츠'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깊이 읽기를 선호하면서도, 자칫 가볍게 읽히는 글쓰기로 기울어지고 있지는 않나 하는 자격지심의 발로.


책의 자살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은 확실하다.


(2020-7-7)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817741#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