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출산의 공통점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하루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책 한 구절을 소개해드리는 숙제강박입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용서를 빌고, 또 용서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길을 가다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히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고, 상대방도 고개를 꾸벅하며 서로 용서하죠. 회사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상사에게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구하고, 상사는 “다음부턴 잘 하자.”라는 식으로 용서합니다.
하지만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용서도 있습니다. 얼마 전 헤어진 연인이나 어렸을 적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했던 부모에 대한 분노, 크게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역사적 분노도 있을 수 있겠죠. 이런 괘씸한 존재를 용서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용서란 영영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조금 불편한 용서>의 저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그녀는 철학의 힘을 빌어 용서라는 개념을 나름대로 해석해 나갑니다. 용서의 개념은 무엇이며, 용서는 왜 해야 하는지, 용서는 누가 해야 하는 것이며 용서라는 것이 가능은 한 것인지 등 여러 시각에서 용서라는 개념을 들여다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구절은 그중에서도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내용입니다.
[진실로 위대한 삶의 순간, 신성한 그 순간은 실제로 항상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아기의 출산 역시 이렇게 해석하면 설득력이 있다. 엄마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작은 태아를 자기 몸 안에서 밀어냄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분리를 성취한다. 엄마는 한 인간에게 말 그대로 생명을 선물한다. 이 선물로 아기가 무엇을 할지, 아이가 감사할지 말지, 아이가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엄마의 소관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손해에, 이런 증여에 아이를 출산하는 그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있는 것이다. 손해를 보며 느끼는 쾌감은 자기 존재를 넘어서는 생명과 생명체의 희열이다.
용서도 이와 같을 수 있을까? 용서는 어떤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예를 들어 타인에게 휘두르는 도덕적 권력을 상실함으로써 가치를 얻는 것일까? 배상을 포기하는 사람은 ‘가해자’를 그의 죄에서 ‘떼어내어’ 조건 없는 자유를 주며, 그에게 ‘감사나 참회를 기대하지 않고’ 생명을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일종의 ‘출산’이다. 나쁜 행위 탓에 생겨난 탯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용서는 논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그렇다고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머리로만 따져본다면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할 타당한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용서는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포기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자유를 주는 불공정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구절에 따르면 용서에는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출산하는 것처럼 내 손에서 온갖 나쁜 감정을 떠나보내는 행위입니다. 용서의 순간, 출산에 비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 상처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아물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에 없던 평화가 찾아오게 될 겁니다.
이런 관점으로 용서라는 행위를 정의한다면, 용서를 구하고 죄를 참회해야 마땅한 상대방이 그러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 없어집니다. 용서를 통해 이미 나에게서 감정이 떠났으므로 상대와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어떤 마음을 갖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며, 나아가 상대가 자유로운 마음을 갖길 바라게 된다면 더 높은 차원의 용서를 해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진정한 용서는 상대의 자유를 원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차마 용서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쑤셔오기 때문에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불쑥 떠올라 여러분을 괴롭게 하는 바로 그 존재 말입니다.
그럴 때는 오늘 소개해드린 구절과 같이 감정을 출산하는 마음으로 용서에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요?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나일뿐더러, 상대는 내가 괴롭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을 테니 이젠 그 괴로운 마음을 상관없는 먼 곳으로 보내주는 겁니다.
오늘은 여러분 모두 용서를 통해 편안함에 이르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숙제강박이었습니다.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