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어느 겨울날의 일기
어느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추위를 곧 잘 타지만 사계 중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 그건 내가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겨울이 되면 눈 오는 것도 좋고 가지가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멋져 보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은 꼭 내게 인사라도 건네는 것 같다. 다른 계절도 멋지지만 역시 겨울 특유의 마른 그 풍경과 분위기가 좋다. 추운 겨울날 집 밖을 나서며 괜히 한번 입을 후 불어 하얗게 흩어지는 입김을 굳이 확인하는 일도 소소한 재미다.
언젠가 하얀 입김처럼 살기를 바란 적이 있다. 비록 그 찰나일지라도 뜨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결국 식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열기라 하더라도 난 여기 있다고, 여기 있었다고 떠나는 그 자리 길을 희게 그리면서. 하얗게 불태우고 하얗게 식어가며 반짝 열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기가 아니면 온기라도 되어보고 싶었다. 순간의 뜨거움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찰나를 영원히 간직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 몇 번의 겨울이 지났지만 아직 나는 입김 같은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은 따뜻함이 소중해지는 계절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소함의 소중함이 배가 된다. 나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눈이 되고 싶다. 역설적이게도 따뜻한 눈이 되어 사람들의 어깨 위에 가벼이 내려앉고 싶다. 추위에 벌벌 떠는 집엔 내리지 않고 눈이 필요한 곳에만 내리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안다. 앞뒤도 안 맞는 말이다. 그래도 이번 생에 한번 사람으로 살았으니 다음 생엔 눈으로 태어나고 싶다. 사실 다음 생애란 것도 없었으면 하지만 그냥 한번 해보는 소리다. 쓸데없는 소리. 푸념. 생각.
생각해보면 내가 눈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래서 눈 오는 날이 그리 좋았는데….
오늘은 길이 얼 정도로 눈이 쌓였던 것을 하루가 다 지나고서야 겨우 알았다.
폭설이라, 그래서 길도 얼고 눈도 잔뜩 쌓여 걷는 게 힘들 정도였는데.
미끄러지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온 신경을 발 끝에 쓰고 걷느라 아스팔트 도로 위 새카만 타이어 자국에 겹겹이 쌓인 여러 발자국만 머릿속에 도장처럼 선명히 남았다.
오늘 하루 흰 눈이 선물같이 내렸다는 걸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이렇게 또 하나를 잃는다. 슬프다. 어른이 된다는 건.
- 2018년 12월의 어느 날 밤의 일기.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 겨울은 사계 중 제일 추운 계절이지만, 조금만 견디면 곧 꽃이 피고 포근한 햇살이 비추는 봄이 올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음 생에 눈이 된다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겨울을 선사하고 싶다. 그리고 얼른 녹아 봄을 가져다주고 싶다.
올해는 흰 눈이 선물같이 내렸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