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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Nov 29. 2020

2020년 11월 1일의 글쓰기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고되다. 최근 글을 계속 쓰면서 느낀 점이다. 사실 뭐든 꾸준히가 어렵다.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일을 하다 문득 돌아보면 모든 일의 첫 시작, 그때 그 마음이 제일 예쁘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된다. 최근에 들었던 생각이다. 남들보다 속도가 느릴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혼자 남아있게 되는 것 같다. 시작부터 남들보다 빠르게 달린다고 해서 모두가 그 경기를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그것을 파고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뚝심이다. 설령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나의 꾸준함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몇 세기가 지나고서라도 결국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연말에 태어나서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러니까 만으로 따지면 항상 연말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식의 나이에서 –2살을 해야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게 참 크게 느껴졌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내가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씩 늦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행하는데 더 어려움을 느꼈다. 어른들에게 주목받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반 아이들과 비교하면 항상 서툴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하고 놀고 있는데 나만 혼자 자리에 앉아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이는 타고난 나의 완벽주의 성향과도 맞물려서 유난히 더 그렇게 느껴진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랬던 내가 자라면서 점점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기 시작하는 때가 있었다. 나는 뭐든 간에 경쟁하는 데 있어서 별로 욕심은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다른 애들보다 뭐든 금방 배웠다.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자만했던 것 같다. 쉽게 질려했다. 뭐든 쉽게 손안에 들어오면 그만큼 쉽게 여겨지는 법이다. 모든 것이 시시하게 여겨졌다. 재미없었다. 그런 탓에 과거의 나는 끈기가 정말 없었다.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고 흥미를 가지지만 조금 해보면 금방 타오르고 꺼지는 불씨와 같았다. 조금

해보다 말았다. 그러면서 나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타고난 천재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천재는 남들보다 쉽게 성공을 거둘지언정 하나도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손에 쥘 순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일에 남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다. 뭐든 꺼내 쓰지 않고 처박아두면 그 위에 먼지만 쌓인 채로 낡아간다. 결국 내게 그런 물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힌다. 나도 그렇게 몇 년 간 내 재능을 그저 방치하고 썩혔다. 그러고서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내 재능을 다시 꺼내서 갈고닦으려니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걸음마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처럼 모든 것이 너무 어려웠다.


 끈기. 사전에 검색해보니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전의 나는 쉽게 단념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지도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마음으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쉽게 단념하지도 못하면서 끈질기게 견딜힘은 또 없어서 이중으로 고통받는 셈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인 격이었다. 하고 싶긴 한데 죽을 만큼 치열하게 부딪혀볼 자신은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비교해보면 굉장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나는 정말 끈기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나는 꽤 끈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을 길게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인생을 길게 보게 되었다.


 꾸준하게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 시점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벌써 포기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속도가 느릴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다 보면 그래도 어떤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꾸준히 하고 싶어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고되다. 뭐든 꾸준히가 어렵다. 그래도 계속해보려고 한다. 꾸준히 하다 보면 뭔가 있겠지.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모르겠지만 밭을 갈고 그 위에 작은 씨를 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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