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명 Nov 29. 2020

불면증

잠들 수 없는 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 가만히 있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잠잘 때만 되면 오랜 흑역사까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된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이불 킥을 하고 싶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결론 없이 다시 맨 처음에 했던 생각으로 되돌아온다. 망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오늘 잠은 다 잔 것이다.


 나는 오랜 불면증이 있다.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다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것도 어떤 재능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잠을 자야 사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생활패턴도 그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그냥 잠만 못 자는 거면 또 모르겠는데 새벽에 드는 생각들은 나를 힘들게 한다. 스스로 가진 모순들이 왜 유난히 그 시간에만 더 잘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쓸데없는 일에 대한 기억력만 좋아서 자꾸 과거의 안 좋은 일들을 떠올린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새벽 4시가 넘어간다. 어제를 고민하고 내일을 걱정하면서 나는 오늘을 낭비하고 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보통의 사람들은 내 고충을 듣고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그럼 생각을 하지 마.’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또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애초에 생각하는 것을 마음대로 멈출 수가 있나?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생각을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이 없었는데. 나는 무언가에 정말 집중하고 몰입할 때 빼고는 항상 사고하고 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더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한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몸을 쓰는 게 더 편하다. 아니면 차라리 한 가지 일만 신경 쓰고 생각하는 게 낫다.


 잠을 못 자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소음이 있으면 소음이 있어서 신경에 거슬려 못 자고, 소음이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불편해서 못 잔다. 어떤 날은 조금의 빛이라도 있으면 눈부셔서 못 자고, 어떤 날은 조금의 빛도 없어 깜깜해서 못 자겠다.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다 잠을 못 잘 것 같아 내려놓고 눈을 감으면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일까지 새록새록 떠올라 또 잠을 못 잔다. 배고파서 잠이 안 와 일어나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돼서 잠이 안 온다. 힘들게 잠들었더니 계속 꿈만 꾸기도 한다. 꿈속의 꿈을 꾸거나 악몽을 꾼다. 그런 날은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다.


 이렇듯 내가 잠 못 드는 이유는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정말 피곤해서 잠들 것 같은데 계속 잠을 못 잘 때이다. 그때가 제일 힘들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라 얼른 자야 하는데 잠들지 못할 때는 실시간으로 몸이 악화된다. 아침이 다가올수록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최근엔 그 정도로 최악인 밤은 없었지만 예전에는 그럴 때면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가야 했다.


 생각도 빨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 전 안 좋은 생각들을 깨끗이 빨아서 건조대에 널어놓고 자고 싶다. 어차피 해봤자 별 도움도 안 되는 생각인데 그냥 세제 많이 넣고 세탁기에 넣어서 빨래하고 싶다. 섬유유연제 넣고 돌려 향기 폴폴 나는 빨래에 살짝 좋아진 기분으로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이미 지난 일 붙들어 뭐하겠어.'하고 싶다. 훌훌 털어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다. 꿈 한번 안 꾸고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깊이 잠들고 싶다. 밝아오는 아침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하루를 알뜰하고 길게 보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11월 1일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