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며칠 전 병원에서 피를 토 하고 쓰러지셨다고 한다. 6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 중인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서 3시간 이상 대기하다가 생긴 일이다. 예약을 안 하고 간 거라 2시간 정도는 예상하고 가셨다지만 3시간이상 걸릴 줄은 모르셨다는 것이다. 3시간 이상 대기했다고 일어난 일은 물론 아니다. 원인은 아직 모른다.
엄마도 여기저기가 많이 아프시다. 3년 전 친오빠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피로와 함께 공복 상태가 너무 길어져 저혈당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번에 저혈당이 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원인을 모른다. 이틀 동안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하며 삼일째 전화를 돌려보니 오빠가 받는다. 비디오 콜에 얼굴 보여줄 힘도 없는지 엄마는 등을 보이고 누워 벽만 보고 있었다. 이틀 동안 화장실도 기어갈 정도로 기운이 없으셨다고 한다. 그날은 그나마 정신을 차린 것이라 하는데 나와 대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주일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신 상태이다.
오빠가 휴가를 내고 부모님을 보살펴 주고 있다. 오빠가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나도 당장 달려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와도 도움이 안 된다며 극구 오지 말라고 하셨다. 꼭 필요할 때 오기 싫어도 와서 도와야 한다며 오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하셨다. 이런 게 멀리 타지에 사는 설움이다. 부모님이 아프신데 당장 도움을 드릴수가 없다. 내가 한국에 간다면 격리 2주를 하고 나와야 하고 그때쯤 내 도움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 미국에서 각 2주씩 총 한 달을 격리해야 한다. 방문 기간에 한 달을 더해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요즘같이 감염이 심해지고 있을 때에 아들과 남편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기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부모님도 늙어가시고 신체 기능이 하나 둘 문제를 일으키고, 나도 내 남편도 내 친구들도 늙어간다. 예전에는 누가 사진을 찍어주면 좋아했는데, 이제는 누가 사진을 예고 없이 찍으면 추하게 나왔을까 신경이 쓰인다. 내 걸음걸이도 친구 걸음걸이도 예전에 내가 본 중년 아줌마처럼 뒤뚱뒤뚱 걷는다. 우리 부부는 언젠가 부터 평생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달고 산다. 친구 부부도 신체의 이상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몇 개월 전 쓰러져 의식이 없는 지인도, 40도 안된 젊은 나이에 통풍이 심해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 친구도 보인다. 우리 집 개도 요즘은 무릎이 아픈지 침대에 오르내릴 때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영화를 보면 나와 같이 탱탱했던 그때 그 스타의 얼굴에 세월이 묻어난다.
나도 늙어가고, 부모님도 늙어가고, 친구들도 늙어가고, 우리 집 개도 티브이에서 보던 스타도 우리 모두 다 같이 늙어간다.
엄마가 쓰러진 이 와중에 하필 나는 옛날 살던 도시를 여행 중이다. 한국을 갈수도 없고, 즉흥적으로 축발했지만 목적이 생겨버린 이 여행을 멈출수도 없다. 내일은 좋은 소식이 오기를 그렇게 속절없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