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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May 18. 2024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왔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우연이겠지만 놀란 것은, 책의 저자 폴 칼라티니가 세상을 떠난 게 2015년 3월이고 번역서 기준으로 책의 발간일이 2016년 8월이라는 것이다.(미국에서는 2016년 1월에 발간되었다) 내가 죽음학을 공부해서 미국 싸나톨로지스트(Thanatoloist, 죽음교육상담전문가) 라이선스를 받은 게 2015년 12월이었다. 죽음학을 공부하고 있을 바로 그즈음에 주인공 폴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한편으론 내가 이 책 읽기를 8년이나 미뤄 왔다는 게 스스로 어이없기도 했다. 죽음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문학도였다가 생명과 죽음의 본질을 찾고자 의사의 길을 선택한 저자가 그 힘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이제 막 자신의 꿈을 펼치려던 순간에 찾아온 암,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못한 마지막 삶. 다시 의사로 돌아가기 위한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과 노력, 그리고 견디기 힘든 투병 과정에서도 써 내려간 글들, 그것이 이 책 <숨결이 바람 될 때>이다.


이 책은 삶의 마지막을 다룬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가르침이나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생애 말기를 다룬 글들은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회한이나 후회,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한 삶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폴의 글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그저 그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겼으며 의사로서 또 암환자로서 그가 겪고 노력해 온 것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투병 중에 얻은 그의 딸을 향한 메시지를 책의 마지막에 남겼다. 

출처 : 미국 abc뉴스 유튜브 채널

이 책에는 그의 레지던트 생활이 비교적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레지던트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게다가 그는 스탠퍼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케임브리지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을, 예일대 의대 대학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수재 중에 수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렵다는 신경외과를 전공하면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업적을 인정받아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의사와 교수자리가 보장되기 직전에 암에 걸린 것이다.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과 연결해서 죽음학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그의 죽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여전히 그는 그가 걸었던 그 길을 걸었을까? 내가 예상하는 답변은 '그렇다'이다. 책을 읽어보면 그만큼 그는 그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삶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했다. 아마도 그래서 위에서 얘기한 대로 그의 책에는 지난날의 삶에 대한 후회의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그 자신은 죽음으로 인해 의사로서 그의 꿈을 더 이상 펼치지 못하게 되는 것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투병하는 동안에도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 꿋꿋이 살아갔고 죽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죽어감을 죽음과 구분해야 하며 죽어가는 사람도 분명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 이어야 한다는 죽음학의 메시지를 그는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니체의 말의 떠 올랐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 줄 뿐이다." 폴은 삶의 마지막에 연명의료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의 나의 서른여섯이었다.

출처 : 미국 abc뉴스 유튜브 채널

책에는 폴 스스로 자신의 성향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컸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삶의 의미를 온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가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대감에 대한 절박한 추구를 이야기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 가지,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앞부분에 있는 여러 인사들의 추천사를 읽다가도 놀라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분들의 진심 어린 추천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바람의 말"이라는 시를 쓴 마종기 시인이 그렇고(이 분이 시인이자 의사라는 건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해인 수녀님과 이국종 교수님의 추천사도 있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에 대한 폴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옮겨본다.

  

".. 미래가 창창한 이 아이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과거만 남아 있는 나와 아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마지막으로 "천 개의 바람"이라는 노래를 소개한다. 내가 죽음학 강의를 할 때 마무리하면서 주로 틀어주는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Xnsn7NxBIY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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