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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Jan 17. 2021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

[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 2] / 영화 "원더풀 라이프"

-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

- 영화 <원더풀 라이프, Wonderful  LIfe>,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츠, 1998(2001 개봉)

길을 걷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는 표현이 맞을 수 있겠다. 한 번은 길을 걷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메인 테마 음악, 그러니까 남녀 두 주인공이 눈밭에서 뒹구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 말이다.(제목이 Snow Floric이다) 그 음악이 귓전에 들려오는 순간 온몸에 뭔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마치 데자뷔처럼 과거 어느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시간을 초월해 그 순간 생생히 되살아 난 것 같았다. 암튼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오르면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온 거였다. 그 영화는 1970년에 만들어졌고 아마 나는 자라면서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과 같은 TV 외화 프로그램에서 최소 두 번 이상은 그 영화를 봤을 것이다.  결국 그 음악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또 다른 어느 날은 출근길에서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지하철역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 도중, 버터(아마 마가린 일수도 있다)를 발라 식빵을 굽는 냄새가 차디찬 겨울 공기를 타고 코끝을 스쳤다. 역시나 울컥하고 가슴속, 그리고 뇌의 시냅스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그 냄새로 인해 반사적으로 또 자동적으로 내 몸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그 냄새와 연결된 감성과 어떤 장면들과 추억들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느껴지는 것이다. 추운 겨울 마가린에 식빵을 굽는 그 냄새는 아련한 따뜻함이었고 돌이켜보면 아름답고 때론 힘들었을 그 시절, 어느 순간을 떠 올리게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짐작컨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사무실에 출근하기 위해 걸었던 그 길가 어딘가에 토스트를 구워 팔던 포장마차가 있었으리라. 나름 치열하게 살았을 그 시절, 어떤 생각에 잠겨 걸으면서 그 토스트 냄새는 그 시절 나의 상황, 고민들, 감정들과 마치 세트처럼 하나로 묶여 뇌 어딘가에 슬며시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어느 겨울 아침, 콧속으로 훅 들어온 그 냄새는 순식간에 이십여 년 전 그 느낌을 소환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흐르게 한 것이다.      

얘기하다 보니 자꾸만 떠오른다. 따분한 늦봄인가 초여름 어느 날 푸르디푸른 하늘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왠지 고즈넉하고 한가롭고 평화로운 주변 분위기와 배경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또 다른 장면, 어느 늦은 오후 또는 초저녁, 조용한 집안 소파에 누워 있자면 집 밖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뛰어노는 소리, 그 소리는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쏴~아 소리를 내며 커다란 나무 사이를 지난 시원한 바람이 나무 냄새, 풀냄새를 고스란히 담아 내 얼굴을 쓰다듬고 지나갈 때면 어린 시절 하굣길과 집 근처의 작은 숲을 떠올리게 한다. 매미 우는 소리는 지나온 모든 여름의 기억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일부러 종종 찾곤 하는 집 근처 재래시장을 지날 때면 한약재 냄새, 향긋한 과일냄새, 비릿한 생선 냄새가 시장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 겨울 얇은 옷을 입은 채 아파트 베란다로 나서면 느껴지는 한기는 왠지 모를 서러움과 서글픔을 온몸으로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내겐 항상 4월보다 잔인하게 느껴지는 11월, 어느 일요일 오후, 주택가 저 뒤편 어딘가로 넘어가는 해질녘 태양과 노을은 그 어느 시절 뼈저리게 느꼈던 허무함과 쓸쓸한 감정을 되살리곤 한다. 비 쏟아지는 날, 코끝을 파고드는 풀냄새와 비릿한 흙냄새는 어떤가...     

 당신은 인생의 어떤 장면을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고를 것인가? 그 장면에는 누가 등장하는가? 혹은, 그 누군가는 그의 가장 소중한 기억 속에서 당신을 떠올리고 있을까? 

죽음의 순간에서 또는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게 될 것이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말이다. 그래도 죽음을 앞두고는 아마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뛰놀던 장소나 잊히지 않는 아름다웠던 여행지와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자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죽은자들은 '림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1주일간 머물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하나씩 골라야 한다. 그리고 림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추억을 그대로 재현해 준다. 당신은 인생의 어떤 장면을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고를 것인가? 그 장면에는 누가 등장하는가? 혹은, 그 누군가는 그(녀)의 가장 소중한 기억 속에서 당신을 떠올리고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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