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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by 잡학거사

세상을 살아가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언제에서부터 언제까지라는 시간적 괘적과 자신의 이름만을 남기는 것이 아닌 인생 자체의 모든 것들이 웅축된 함축성을 갖고 영의 세계 속에 승화된 에너지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헬라어(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크로노스(χρόνος, 물리적 시간)와 카이로스(καιρός, 논리적 시간)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하며,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으로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며,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든,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그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순간,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된다고 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관리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인간들의 속성은 각기 다른 시간의 개념을 갖고 살아갈 수 있으며,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어떤 사람이 느끼는 24시간의 속도와 달리 느끼는 24시간의 속도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이의 한 시간의 느낌은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한없이 행복한 순간이나, 너무나 힘들어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절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벗어나 자신만의 각성된 특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열심히 살며 잘 계획한다고 하드라도 시간적 위치나 시간 속에서의 시간적 관계와 상태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바가 매우 적은 것은 사실이며, 깨우치기도 더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는 지난(至難)한 일일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의 괘적 속에서 어떤 사건을 연구하고, 자신이 정의를 내린 결과를 가지고 제시는 할 수 있지만 과거 사건의 정확한 속성과 배경이 카이로스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속성과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의 변수값은 우리 인간들이 유추하거나, 측정의 가능성을 넘어서 버리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대학에서는 과거의 일을 연구하는 데에는 하나하나의 일을 아무리 상세히 안다 하더라도, 그 시간적 위치나 사건 상호간의 시간적 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지식을 체계화할 수 없고 또한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내용들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느끼며 살아가는 순간은 눈의 깜박임에서 유래하는 “순간”이란 의미로 시간적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후일에 와서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적 규정을 갖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철학사상으로 순간의 개념을 처음으로 규정한 것은 플라톤이며, 순간(to exaiphnēs)을 운동이나 정지로 변화하는 시점, 또는 운동과 정지 사이의 일종의 기묘한 것(장소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여 시간(크로노스(χρόνος, 물리적 시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순간은 단순한 시간적 규정을 나타내는 말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높여져 영원한 현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양적 관점에서는 시간의 길이 기반의 시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특정한 순간을 가리키는 말로 “촌각과 경각”, “순식간과 별안간”, “찰나와 잠시”, “억겁과 영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경각이나 촌각보다 더 짧은 시간을 나타낼 때 순간이란 말을 쓰며, 순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는 정도의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찰나는 순식간이나 별안간보다 더 짧은 시간으로 가장 작은 시간 단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찰나의 순간은 눈부시게 반짝거리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으로 자아의지를 통한 행위는 영원 속의 에너지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한 자아의지적 행위의 속성 값들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점 같은 찰나 속으로 에너지로 변환되어 공간 그 자체에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잘 모르겠으나, 창조의 역사 속에서 시간과 공간, 차원적 측면에서 영원한 공간속에 자신만의 것들이 함축된 기억이라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면 절대 선을 향한 찰나와 순간의 경계선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함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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