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UPS”와 “APS”라고 쓰는 경우를 듣게 됩니다. 저는 항시 UPS라면 무정전 전원 장치(UPS)가 머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APS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이나 SNS인 Twitter, Facebook에서 자주 사용되는 축약어(Acronym)인 “ASAP(as soon as possible, 어셉) : 가능한 빨리”, “OMG(Oh My God), OMFG(Oh My F****** God)”와 같이 너무 놀라 스펠링을 잘못 썼다는 표현들의 일종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로 눈짓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한번은 자세히 물어 보았답니다. UPS는 “유난히 피곤한 스타일”이며 APS는 “아주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가르쳐 주며, 만일, 상대가 UPS라고 판단이 되면 다시는 만나지 않기 위하여 같은 편끼리 은어로 사용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물론 저와 관련 없는 다른 상황에서 사용되었고, 제 앞에서는 쓰지는 않았지만, 저는 제가 UPS와 APS 속성을 아주 확실히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가족들이 저와 같이 있으면 왠지 힘이 들고 피곤해진다며, 특히 제가 육체적으로 피곤해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더욱 심하다고 이야기하여 잘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일대로라는 손자의 [군쟁]편에 언급되는 36계 가운데 4번째 계책의 해석과 같이 “상대가 피곤하면 나는 편안하다.”라는 의미로 가족이나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거나, 현재의 상황 속에서 상대의 상태를 간파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행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보거나, 거래 관계에서 이익이 없다면 피곤한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만나지 않거나, 연락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이기에 어느 정도의 피곤함은 슬쩍 눈감아 주거나, 이야기를 하여 자제케 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영역의 관계 속에서의 피곤함도 있겠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남과의 관계에서의 피곤함이며, 상호 관계의 이해도에 따른 피곤함이 크게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과 10 사이의 범위에서 보면 상대는 8을 제시하거나, 진행하고 있는데 자신은 5를 인식하고는 정말로 이해가 안된다고 하거나, 상대에게 그와 같은 수준을 전달하며 이해를 못하거나,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언짢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맞을 수도 없고, 같을 수도 없는 것이 인생지사인데 수용 못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완벽함을 논한다기보다는 우리는 어디에서나 완전함을 요구 받는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필사적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까지 살아남기 위하여 완전함을 충족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가식을 표출하거나, 아님 자신이 만든 세계로 포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완전하고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으며,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는 자신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포장된 자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포장되었지만 포장의 의미나, 포장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그것이 최선인양 멋을 부리는 착각 속에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조자이시며 절대적인 신이 아니기에 불완전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인간으로써의 기본적 자질에도 못미치기 때문에 화장이나 성형과 같은 포장을 통하여 완벽하거나 온전한 척을 하지 않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간이기에 완벽과 온전함을 갈망하지만, 우리가 추구하여야 하는 완벽의 완전과 온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갈망하는지에 대하여는 뒤돌아 되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완벽함과 온전함이 최고의 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에 혼재되어 있는 것들의 조화 속의 결정체로 살을 에는 아픔 속에 탄생되는 진주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이라는 세월을 태어나 자라며, 성장하는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하여 느끼는 의미적 결론은 돈과 명예와 지식만으로 다가 아닌 진정한 좋은 사람으로는 서로 북돋아 주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를 생각하며, 세상을 살다보면 만일 내가 안 되면 너도 안돼를 주창하는 수많은 군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사업과 컨설팅을 통하여 많은 인간들을 만나며, 생각하기도 싫은 경우와 왜? 저렇게 할 수 밖에는 없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말은 있지만, 다양한 인간들과 부딪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선하고 악한 것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여 관계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 같으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관계의 의지를 꺾지 않고, 관계를 위해 포기하지 아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한 선행적 기반은 자신의 온전함과 완전함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기 보다는 자신의 살아 있음에 대한 존재적 가치에 대한 속성 값으로서 절대적 좌표와 신뢰에 대한 자신만의 명제를 확보하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여 관계로 모든 것은 마무리되므로 현재의 자신이 아닌 거듭나는 지혜를 통하여 사랑을 크게 베풀거나 나누는 관계로 확장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