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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랑 May 31. 2020

충동구매, 텃밭을 대여하다: 무려 200평

농사는 책으로 배울게요

농... 농사라니?

나보고 시골 가자고?

난 뼛속까지 도시인이야!


어느 날 남편이 선전포고를 했다. 지역 카페에 올라온 텃밭 전세 글을 보고 덜컥 농사를 짓겠다는 거다.

그것도 무려 200평.

200평?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만 한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언급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지른 사람이 책임을 지겠지 하는 마음에 구경이나 가자고 했다.


음... 지금 생각하면 안 가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밭에 휘둘릴 줄 알았다면...

텃밭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무려 동해안 뷰를 가진 조용한 개인 산의 언저리였다. 아무것도 안 심고, 아무것도 안 해도 절로 힐링이 될만한 나지막한 산의 첫 입구. 그 인상에 반해 우리는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생각보다 200평이 넓은 건 아니네, 우리 집보다 좀 더 큰 것 같은데. 이 정도야 뭐.

뻥 뚫린 경치가 주는 착시를 착시인 줄 모르고, 도시인 2명은 겁 없이, 아는 것도 없이 200평 농사에 뛰어들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심어도 절로 힐링되는 동해바다




저 쪽 입구랑 먼 곳은 전부 고구마를 심자. 일 년 내내 고구마를 먹는 거야!

울타리 근처에는 옥수수를 심자. 옥수수도 주야장천 먹는 거야!

땅콩도 심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어. 땅콩도 심자!

상추랑 깻잎도 당연히 심어야지.

그래도 저기에 뭔가 심어야 해. 땅이 남아!


아무리 머릿속으로 밭을 쪼개 봐도 남는 빈 땅을 느끼면서, 그제야 밭이 너무 크다는 불안감이 슬슬 엄습해왔다. 내 땅이라면 사과나무라도 심을 텐데, 전세로 임대한 땅이니 심기도 전에 사과나무가 아까워서 시도도 안 하기로 했다.

막상 시작하기로 했지만, 초보 2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땅... 결국 남편이 대안을 냈다. 비슷한 결을 가진 후배네와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되는대로 서로 원하는 것 심고, 잡초는 안되면 같이 키우는 마음으로 놔두고, 물은 남편이 퇴근길에 주고, 적당히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뿌리기로 결정하자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가. 넓은 텃밭으로 생긴 불안감은 같이 할 동료가 생겨서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샀다. 뭐든 탄탄한 이론 위에 실전을 쌓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한 두권 읽다 보면, 이론만은 10년 차 농사꾼이 될 것 같다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인생을 책으로 배운 자의 오만이라는 게 확인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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