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랑 Jun 04. 2020

옥수수를 지켜라

까치, 옥수수 싹을 다 뽑아먹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책으로 배운 것과 실전 역시 다른 문제이다.

안다고 생각한 일, 쉽다고 생각한 일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밭에서 계속 겪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옥수수광, 특히 괴산 대학 옥수수 마니아인 남편은 텃밭에서 제일 먼저 대학 찰옥수수를 재배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마다 옥수수만 사러, 괴산에 들르는 사람인만큼, 이젠 기름값 아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동의했다.


일반 찰옥수수 낱알의 가격은 2000개당  8천 원., 대학 찰옥수수는 2000개당 3만 원으로 거의 4배 가까이 비쌌다. 비싸긴 해도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맛도 좋고, 먹기도 편하고, 크기도 큰 대학 찰옥수수는 왜  괴산에서만 키울까?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옥수수 낱알이 도착했고, 우리는 그걸 심기로 했다.


얼핏 보면 차라리 팥 같은 옥수수알


옥수수 낱알의 색깔은 당황스럽게도 붉었다. 병충해 방지를 위해 코팅을 해서 붉은색이었다.

아, 비싸게 처리를 한 비용인가? 비싸서 괴산 말고 다른 농가에서는 안 심는 건가?

이런저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당장은 심는 것 말고는 의문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나의 의문의 실마리는 어릴 적 외할머니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내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왜 경남 사천의 외가에서 키우는 옥수수맛은 강원도 옥수수보다 맛이 덜한지, 우리도 강원도 옥수수 사다가 키우자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할머니 밭의 옥수수도 강원도 찰옥수수를 가져와서 키운 건데,  땅이 달라서 맛이 달라졌다고 하셨다.

정말 땅이 다르면 맛이 확 달라질까? 모르면 찾아보는 수밖에.


으응?  이럴 수가. 대학찰옥수수의 비밀에는 멘델의 유전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배웠던 멘델의 우열의 법칙에 따르면 부모세대의 유전 인자는 1:2:2:1의 비율로, 표현 형질은 우성:열성이 3:1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찰옥수수의 품질은, 열성인자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풍매화인 대학찰옥수수 꽃이 바람 따라 다른 품종 옥수수와 만나면, 다른 옥수수를 맺을 수밖에.

대학찰옥수수는 그걸 방지하기 위해, 일정 반경 안에서만 키우고, 그 근처에는 아예 다른 옥수수는 심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열성인자라 종자를 받아서 키워 보았자, 효과가 없어서, 해마다 종자를 미국에서 특허비를 주고받아온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수가 처음으로 재배했지만, 특허권은 미국에 넘어간 상태란다. ㅜㅜ


상황이 심각해졌다. 우리 밭 주변에는 5개 정도의 밭이 있고, 다른 밭 모두 옥수수를 심어놓은 상태이다. 그걸 다 뽑고, 다 같이 대학찰옥수수 먹자고 낱알을 나눠줘야만이 남편이 학수고대하는 대학찰옥수수를 올해 맛볼 수 있다는 거다. 완전 욕먹을, 그것도 찰지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만한 방법인 거다.

남편은 일주일 간격으로 씨앗을 뿌려서 최대한 늦게 뿌린 낱알에서라도 대학찰옥수수를 수확하자고 했다.

빨리 뿌린 낱알은 아무래도 주변 밭의 영향을 받겠지만, 늦게 뿌린 건, 우리가 먼저 뿌린 옥수수와 수정될 확률이 높다나...

아이고. 완전 간섭쟁이 부모가 된 느낌이구나.

옥수수야, 다른 친구들한테 물들면 안 돼. 네 친구는 내가 만들어줄게. 이 안의 친구들과만 서로 꽃가루를 주고받는 거야.

옥수수야,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그걸 안다면 옆 밭 친구들은 쳐다도 보지 말아라. 연애결혼은 죽어도 안된다!! 니 짝은 내가 다 정해놨다.

이런 기분이 들었지만, 대안이 있나. 일단 남편 의견대로 해보는 수밖에.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옥수수의 씨앗은 발아를 해서, 싹이 오르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느낌에 2차로 씨앗을 심고, 우리의 똑똑함을 자화자찬을 했었다. 옥수수의 싹을 몽땅 도둑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구멍 속 옥수수는 어디에? 


2번째 낱알을 뿌린 다음날,  옥수수 밭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까치의 습격으로 대부분의 옥수수 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흙도 파헤쳐져서 남아있는 옥수수 낱알은 1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이건 뭐, 괴산 찰 옥수수는커녕, 아무 옥수수도 안 열리게 생겼다. 심지어 까치들은 10 여알 달렸던 딸기들도 다 먹어버렸다.


 





큰 걱정 앞에 잔걱정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몸도 여기저기 아프면 제일 아픈 곳 말고는 통증도 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대학찰옥수수의 잡종화가 아니다.  과연 까치들에게서 무사히 옥수수를 지킬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급선무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방법을 찾아서 옥수수를 지켜야 한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참 많다.

몇 권의 농사 책을 읽었다고, 살짝 건방져질 뻔한 마음이 다시 작아졌다.

알고 보니, 텃밭이 위치한 동네의 옛 이름이 까치골이라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까치를 다 쫒고 싶지만, 객이 주인을 쫓아낼 수야 없는 격, 어떻게든 행복한 동거를 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리해서, 초여름 옥수수가 주는 노란 행복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충동구매, 텃밭을 대여하다: 무려 200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