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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Mar 12. 2024

쇄편 2

그렇게까지 홀가분 하라는 건 아니었다

 우연히 옛친구를 만났다. 오래 전 끔찍한 짓을 저질러서 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리게 한 여자였다. 내 부친상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척 그녀에 대해 말했다. 기억은 경험을 왜곡한다. 기억은 가장 극단적인 순간들만 선별하여 훨씬 더 많은, 소소하나마 분명히 행복했던 경험마저 덮어씌워버린다. 나는 더 이상 기억에 속지 않으련다. 별처럼 빛나지는 않을지언정, 사금파리처럼 소소했던 행복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련다.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녀는 마치 리스테린 광고모델이라도 된 양 상쾌하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유난히 가지런해 보이는 치아를 보며 혹시 너 라미네이트 했니?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았는데... 라고 할 뻔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혹시나 마음에 짐을 짊어지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 맞았지만 그 정도로 홀가분하니 또다시 상처가 됐다. 홀가분하라고 한 말은 맞는데 그 정도로 홀가분하라는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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