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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09. 2024

벚꽃이 필 때마다

분분한 상상

 실은 딱히 벚꽃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되도록 매일 관악산에 가서 햇빛을 쬐고 오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올해로 네번째의 개화를 보고나니 벚꽃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얼핏 하얗게 보이는 꽃잎이 팔랑팔랑 떨어져서 도로 한 켠에 고이면 비로소 분홍빛을 내는데, 꽃잎이 쌓일 수록 진해지는 그 색깔이 어쩐지 나에겐 핏빛보다 강렬하다.


 너무 빨리 져버려서 때론 피우기도 전에 지는 것 같은 벚꽃은 누군가에겐 죽을 이유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살 이유이기도 할테다. 나는 딱히 어느 쪽도 아니지만 으레 떨어지는 벚꽃잎을 머리와 어깨와 손바닥으로 받아내며 입 안으로 중얼거린다. 분분한 낙화. 분분한 낙화. 어쩜 떨어지는 꽃잎을 분분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분분한 낙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던 싯구에 이제와서 가슴이 미어진다. 어느새 눈 앞엔 상상인지 기억인지 예지인지 알 수 없는 헤어지는 연인이 있다. 차마 이별을 말할 수 없었지만 건강하라는 당부만으로 서로의 뜻을 알아버린 두 연인들. 서로를 품 속 깊이 끌어안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길항하여 한참을 서로의 손만 붙들고 있다. 벚꽃잎이 꼼짝도 않고 있는 연인의 머리와 어깨에 두텁게 쌓인다. 꽃잎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이윽고 허공보다 꽃잎이 많을만큼 분분해지고, 떠나야하지만 차마 떠나지 못한 연인이 있던 자리에는 결국 두 개의 꽃 무더기만 남을 것이다. 얼핏 하얗게 보였던 꽃잎은 무더기를 이루며 비로소 분홍빛을 내는데, 점점 진해지는 그 색깔이 어쩐지 나에겐 핏빛보다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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