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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ug 06. 2024

검은물잠자리 날아가는 동안 - 외전1

아비의 형제들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간 날이었다. 아버지는 잠들어있었다. 곁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만 가볼까 싶을 때 쯤 깨어났다. 방금 전 나 말고 누군가 왔다갔다고 했다. 전에도 그랬듯 꿈이었을 것이다. 죽기 전의 아버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누구요? 누가 찾아왔어요? 아버지는 대답했으나 워낙에 웅얼거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누가 찾아왔는지 몰라도 아쉬울게 없었지만 아버지는 못내 답답한 듯 했다. 킁킁... 느이 킁킁아부지 말야. 오래 전 잊은 호칭에 나는 씁쓸하게나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래에 비해 빠를 것도 늦을 것도 없이 말문이 트인 나는, 그러나 발음은 또래에 비해서도 형편 없었다. ‘변신 로보트’를 사달라는 징징거림에 어머니는 하고 많은 멀쩡한 로보트 말고 왜 하필 병신 로보트인지 의아할 뿐이었다.


 시원찮은 발음으로 ‘첫째 큰아버지’라는 호칭이 너무 길고 어려웠기에 나름의 대안으로 ‘큰큰아버지’라 불렀다. 놀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어른들은 고작 그 정도에도 웃느라 몸이 넘어갔다. 결국 첫째 큰아버지는 이후 오랫동안 ‘킁킁아버지’라 불렸다.


 첫째는 운전기사였다. 처음엔 버스를 몰았고 이후엔 택시를 몰았다. 이는 동생들에게까지 이어져 넷째까지 기사를 했다. 아마도 집안의 환경에서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급의 직업이었을게다.


 첫째는 내가 아는 것 중에서는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 전쟁 때, 옆집 친구네 방문했다가 폭격을 받았는데, 혼비백산하여 집에 돌아와서 보니 온몸에 친구의 살점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살점의 주인과 그게 붙은 사람이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었을 거라고도 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돌이켜 봤는지, 정작 말을 전하는 첫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빈 잔에 쏘주를 채울 뿐이었다.


 첫째는 당시로써도 형제들 중에서도 드물게 연애 결혼을 했다. 다섯째는, 결국은 나는 나눠받지 못한 유전자의 발현인지 젊은 시절엔 상당한 미남이었다. 결혼식 날 동네 처녀들이 새신부의 박색에 대해 수근거렸다.


 분가한 첫째네 또한 부부싸움이 역동적이었다. 장롱을 던졌다는 전설은 할아버지의 다듬잇돌 투척 전설에 버금갈 수준이었다. 부부싸움 다음 날이면 두 부부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함께 장을 봐왔다. 이따금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건넛방 구석에서 서로 끌어안고 떨고있던 자녀들은 내일 저녁은 고기를 먹겠구나, 했다. 킁킁아버지와 킁킁어머니는 해로했다.


 어느 구정에 이제부터 조카들의 새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새뱃돈만 받고 말만큼 염치 없지 못한 조카들이 절을 하려하니 몸을 돌렸다. 첫째는 이듬해 작고했다. 그제야 다들 절 받기 싫었던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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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꿈을 통해 찾아왔다. 그 중 가장 젊은 모습이었을 둘째는 유독 할아버지를 닮은 얼굴을 가졌다. 젊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할머니는 가끔 그 얼굴에 깜짝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늘 손에 담배를 쥐고 있었다. 아버지의 꿈 속에서조차 그랬다. 둘째는 할머니를 몇 년 앞서 폐암으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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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는 부모가 가장 신뢰하는 아들이었다. 제사와 차례와 그 외 모든 집안 행사는 맏이가 아닌 셋째가 주도했다.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말술이었지만 어지간하면 취할만큼 마시지 않았고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다. 아들들네 순회로 소일하던 할머니가 가장 오래 머물던 곳도 셋째네였다. 결국은 셋째가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직후 유산의 차등적인 분배 비율이 공표되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지분에 만족하지 못한 대다수 아들의 대표가 된 다섯째가 셋째 형에게 삿대질을 했다. 뭐라고 말도 많이 했지만 캉캉구두, 연필 깎는 칼, 국민학교 마지막 날 등의 특정 키워드만 쓸데없이 반복되어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셋째는 어딘지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박도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후 유산 비율은 재조정되었다. 명절에나마 이어졌던 형제들의 모임은 점차 해체됐다.


 장례식장에서, 셋째 큰아버지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유골은 어찌할 것이냐고 물었다. 실은 어디 야산이나 낚싯배라도 빌려서 먼 바다에 버릴 작정이었던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의 형제 중 유일한 상식인인 셋째 큰아버지에게 그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면서 이제와서 참견말라고 덤빌 수도 없었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다. 괜히 돈 더 쓰지 말고 알아서 처리하거라. 우리는 상관 않겠다. 내 침묵을 고민으로 받아들였는지 큰아버지가 덧붙였다. 살아서도 갑갑한 아파트에 살다가 죽어서도 아파트에 사는게 뭐 좋겠냐. 경치 좋은 곳에 네가 알아서 해라. 비록 아버지는 한 평생 아파트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든 셋째 큰아버지는 혼자 신발을 신지 못해서 내가 쭈그려앉아 신발을 신겨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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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는 젊어서 월남에 갔다. 가족들의 반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출국 전날 저녁 먹으면서 사실을 고했다. 종종 미제 물품을 잔뜩 보내줬다. 할머니도 이미 전쟁을 겪어본 만큼 완전히 낯선 물건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깡통에 가득 들어찬 검은 가루만은 정체불명이었다.


 옆면 꼬부랑 말 사이에 끼어있는 그림을 봤을 때, 우선 물에 타야한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미싯까루 같은 것인가 싶었다. 물을 떠다 두어 숟갈 타서 휘휘저으니 그럴듯한 색깔이 나왔다. 한 모금 마셔보니 켁 소리가 나며 얼굴이 다 일그러질만큼 쓴데, 또 입안에 남은 맛은 알 수 없는 구수한 향을 풍기는게 아닌가. 양초를 가래떡으로 알았던 옛 전래동화 속 촌부들처럼, 할머니는 그것이 양놈들 먹는 보약이라고 결론내렸다.


 그 후 할머니의 자식들은 아침마다 냉수에 커피 두 숟갈을 탄, 셋째의 경우엔 세 숟갈을 탄 것을 한대접 씩 마셔야 했다. 시대가 달라도 챙겨주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들 불평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광에 장작패는 도끼날이 반짝였기에 형제들은 잠자코 프림도 설탕도 없는 냉커피 한 사발을 삼켜야만 했다. 밤에 도무지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보약이 맞긴 한 모양이었다. 이후 작고한 형제들의 제삿상엔 늘 커피가 올라갔다. 고엽제 후유증인 암으로 작고한 넷째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넷째는 형제들 중 첫째 다음가는 미남이었다. 홀아비로 죽은 넷째의 장례식장엔 가족들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여자들이 여러 번 와서 섧게 울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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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는 다섯째와 유독 친했다. 집도 가까이 살았다. 종종 그 아들들이 울면서 뛰어와 도움을 청했다. 술 마시고 있던 다섯째는 이가 닳도록 양치를 하고 동생의 집으로 가서 근엄한 표정으로 그의 폭음과 가족에 대한 폭력을 꾸짖었다. 피가나는 잇몸을 혀끝으로 쓰다듬느라 말이 자꾸 끊겼다. 여섯째는 간경화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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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째는 형들 못지 않은 비운의 풍운아로 살았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도 무언가 도저히 제껴둘 수 없는 일이 있어서 일단 자신의 ‘동생들’을 보냈다. 열 명 가까운 인원의 동생들은 술집이라도 온 것마냥 떠들썩 했다. 첫째도 셋째도 넷째도 못 본 척 했다. 유일하게 나선 것이 다섯째였다. 다섯째가 벼락이 치듯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침묵이었다. 다섯째가 재차 불을 토하듯 외쳤다. 이 쌍놈의 새끼들아, 늬들 지금 상갓집 왔어 아님 잔칫집 왔어? 어디 상갓집에서 짠을 해 이 못 배워먹은 새끼들아. 다 처먹었으면 집에 가 이 새끼들아. 가, 안 가? 명치 한 번 맞아볼래?


 다섯째는 팔뚝을 수직으로 내보이고 중지 부분이 튀어나오도록 주먹을 쥐었다. 마치 손에 흉기라도 쥔 것처럼 흔들며 다시 한 번 위협했다. 진짜 이걸로 명치 한 번 맞아볼래?


 동생들은 집에 갔다. 형님의 형님이라 봐준다고 꿍얼거렸다. 잠시 후 일곱째가 도착했다. 폼나는 코트를 입고 자기 동생들이 어디 있는지 둘러봤다. 얘들 어디갔어? 형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섯째 형에게 뺨을 맞았다.


 지금은 식당을 하는 듯 했다. 주말이 대목이었지만 ‘동생들’을 대신 보내지 않고 임시 휴업 후 다섯째의 장례식장에 왔다. 내 도움을 받아 신발을 신은 셋째가 이제 그만 가자고 할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영정을 바라봤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일곱째도 집에 가서 혼자 울 것임을 알았다. 형, 형! 하면서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흐느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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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째, 막내 고명딸은 셋째를 부축해 장례식장에 왔다. 다섯째 오빠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쁜 인간이었는지 강조하며 이따금 상주인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난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라고 했다. 고모가 오빠들이 차마 못하는 말을 대신해주는 것으로 짐작했다. 흥에 겨워 몇 번이고 잘 죽었다 할 뻔했지만 꿀꺽 삼켜버린 절제력도 높이 평가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허공에 분분한 고모의 침을 맞아가며 식장 입구를 바라봤다. 어느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낯선 귀인이 찾아와 실은 아버지가 꽤나 멋진 사람이었음을, 아들인 나도 모르게 세상에 많은 아름다움을 남기고 갔음을 증언해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고모는 아들인 나도 모르고 있던 각종 일화들을 꺼내와 아버지가 여지없는 나쁜 놈이었음을 증언했다.


 한바탕 욕을 쏟아낸 고모가 그러나 여력이 한참 남았는지 곧바로 자기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를 욕했다. 담배도 안 먹는 엄마가 폐암으로 죽은 건 전부 다 아빠 탓이라고 했다. 이따금 나를 보고 말했다. 삼대는 안 된다. 삼대는 안 돼. 너 정신 똑바로 차려. 삼대는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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