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롬 Aug 23. 2024

굳이 체중감량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굴려!

 한창 직장에 다닐 때 일이다. 늘 그랬듯 잠자리에서 일어나 약 삼십분간 명상을 하며 오늘만은 죽었다 깨어나도 출근 하기 싫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화장실에 갔다. 세수를 하려고 몸을 숙이는데, 허리춤에서 '뚝'소리가 나는 동시에 타일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허리에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동시에 끔찍하게 아팠다. 언젠가 독거인은 화장실 갈 때도 핸드폰을 챙겨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 지 깨닫는 동시에 어찌하여 그런 꿀팁을 여상히 흘려버렸는지 후회에 가슴이 에일지경이었다.


 어찌어찌 허리의 통증을 최소화하여 높은 포복으로 내 방으로 이동했다. 고참 빤쓰 손빨래 하기 싫어서 도피성으로 임관한 주제에 자신의 하사관 경력을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는 늘 그랬듯 만취했던 어느 날 훗날 공익을 하게될 어린 나에게 낮은 포복과 높은 포복의 방법과 요령을 전수하고 실기 시험까지 봤던 적이 있는데, 수십 년 후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집어 당시 팀장님에게 연락했다. 허리에 문제가 생겨 아무래도 오늘 정시 출근은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실 이전을 일주일 앞두고 정신없는 시기였고 팀장님은 제발 쾌차하라고 나를 위해서인지 어쩐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첫번째 연락을 사용했다는 비애가 통화를 끝낸 후에야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다.


 적지않은 시간 동안 아무리 끙끙거리고 소리를 질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독거인의 비애 또한 삭혀낸 후에야 용기를 내어 생애 첫 119 신고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주소와 공용 현관문 비밀 번호와 현관문 비밀 번호까지 일러주고 나서 망설임 끝에 말했다. 제가 체중이 좀 나가거든요. 힘센 분들이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음주와 폭식 뿐이었던 것은 직장인의 비애인지 독거인의 비애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두어 명 분량의 근육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듯한 거구의 구급대원 세 명이 도착했다. 신뢰와 든든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감스럽게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이후 십여 분 간 그들과 나 총합 네 명의 거구들이 엉겨붙어 눈뜨고 못봐줄 모습을 연출했다.


 - 둘, 셋! 힘줘, 힘!


 - 아악, 아아악! 아파요!


 - 악, 손가락 끼었어, 손가락 끼었어!


 - 놔 봐요! 일단 놔 봐! 아악! 놔 이거!


 고통에 몸부림 치던 나는 급기야 내 겨드랑이를 파고든 구급대원의 정수리를 찰싹찰싹 때리며 저항했다.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대원이 잠시 물러나서 상황을 관측하더니, 결국 가장 효과적인, 바로 그렇기에 비정한 방식을 결심했다.


 - 굴려!


 -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억센 여섯개의 손바닥에 밀려 데굴데굴 굴러 구급 침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욕설을 내뱉지 않아서 돌아생각해도 다행한 일이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간호사 대부분이 남자였고, 이번만은 나를 들어서 옮겨주리라고, 이미 바닥을 보였으나마 몇 방울쯤 남았을 나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또한 잠시뿐이었다. 나를 들어서 옮기려 자세를 취하는 간호사들을 제지한 것은 오히려 최선임 구급대원이었다.


 - 안 돼, 안 돼! 굴려야돼. 해봤는데 안 돼. 다쳐, 다쳐! 굴려야 돼!


 결국 지켜지지 못한 나의 존엄성과 허리의 통증, 심신의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옆 병상에 할아버지가 젊은 놈의 앙탈에 분노했는지 벼락처럼 소리질렀다. 아 거 참 조용히 좀 해! 서운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재채기하다 뼈가 부러져서 입원하신 분이라고 해서 서운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행히 뼈의 문제가 아니라 근육의 문제라고 했고, 링겔 두 개 분량의 진통제도 소용이 없어 이대로면 입원을 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사무실 이사 준비 과정에서 뭔가 맛이 가버리고 있는 듯한 팀장님 생각에 억지로 퇴원을 했다. (돌이켜보면 팀장님은 이후 확실히 좀 이상해졌다. 전두엽이나 그에 준하는 중요도를 가진 어딘가에 손상을 입은 듯 하고, 또한 충분히 그럴만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후,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하여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게 아닌지 하는 걱정이 피부로 와닿았고, 이후 2년간 체중감량 중이다. 해보니 체중감량이라는게 평생하는 거구나 싶다. 20킬로를 빼면 10킬로가 찌고 다시 10킬로를 빼면 5킬로가 찌는 식이다. 어찌됐든 체중은 꾸준히 우하향하고 있고, 몇 년 내로는 스무살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늘 체중감량의 이유를 묻는다. 여자친구 생겼니? 거참, 체중감량이 왜 꼭 미용목적이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보통은 위에 서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디가서 실패한 적이 없어서 회식 같은 자리에서 아이스 브레이킹 목적으로도 자주 써먹는다. 다만 같은 얘기를 오십 번 정도 하다보니 이젠 내가 지겨워서, 간단하게 더 오랫동안 글쓰고 싶어서요, 하고 만다. 이 또한 거짓말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