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단편
그 뒤로도 쌍둥이들의 호미를 찾기 위해 해넘이재를 향한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쌍둥이들의 울상을 보고 있기 괴로워서, 혹은 쌍둥이에게 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 나선 그들은 결국 모두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돌아왔다. 창백한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은 마치 그들의 몸 안에 가득 찬 공포가 흘러넘치는 듯했고, 가끔은 바지에 어두운 얼룩을 하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집 안에 틀어박혀 버렸다.
그 때마다 괴물의 공포와 위명은 몇 단계씩이나 올라갔다. 더 이상 괴물은 몇몇 아이들의 상상이나 허풍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선연한 현실감을 가지고 검은 안개처럼 우리들을 감쌌다. 우리들은 공포의 안개에 매몰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감히 해넘이재 부근을 쳐다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또래 중 가장 용기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술도가 셋째를 마지막으로 호미를 찾아오겠다는 지원자는 뚝 끊겼다. 날마다 누이로부터 호미의 행방에 대한 추궁을 받는 쌍둥이들은 급격히 야위기 시작했다. 비쩍 말라 네 개의 눈알만 데룩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들의 거무죽죽한 얼굴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상징과도 같았다.
사태의 심각성이 모두에게 전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오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 모였다. 그리고 엄숙하고 진지한 회의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지? 살금살금 다가가서 잽싸게 가져오면 되지. 너 지금까지 뭐 들었냐. 괴물이 눈치가 빨라서 다 알아차린다잖아. 야, 그냥 호미 포기하면 안 되냐? 아, 안 돼. 오늘까지 못 찾아오면 우리 정말 쫓겨나. 굿이라도 해볼까? 호미 돌려달라고. 그 준비는 누가 다 하냐. 그리고 설대골 박수는 돈 없는 놈한테는 불러도 오지도 않잖아. 구미호 꼬리털이라도 바쳐보면 어떨까. 괴물도 구미호 꼬리털을 갖고 싶어 할까? 내가 아냐? 어른들한테 부탁해보면 어떨까. 내가 큰형한테 조르다가 한 대 맞았어. 어른들은 우리 말 안 믿어. 방법이 없군.
그 외에 관아에 신고를 한다거나 아예 나라님께 가서 읍소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가난 구제 말고는 못하는 게 없는 나라님도 이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대다수의 의견에 밀려 역시 채택되지 못했다.
진지한 회의의 분위기는 점점 늘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진전 없이 격론을 계속하다 그도 지쳐버리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가 더워 죽겠는데 다 집어치우고 참외 서리나 하러 가자는 의견을 내고, 모두가 그 의견에 동조할 때 쯤,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쌍둥이 동생이 외쳤다.
다 같이 가서 찾아오자!
모두가 침묵했다. 목이 졸리는 듯한 침묵이었다. 누군가 새파란 얼굴로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경직된 우리들 주변으로 움직이는 것은 한가하게 흔들리는 느티나무 잎뿐이었다. 그리고,
위이잉. 눈치 없는 파리가 있었다. 위이이잉. 파리는 우리사이를 가로질러 점배기의 이마 한가운데 척 앉았다. 즈즈즈. 비정상적 고요 속에서 파리가 내는 희미한 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럴 리 없지만, 파리가 쌍둥이 동생의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 같이 가서 찾아오자. 다 같이 가서 찾아……
타악!
우리 모두를 움찔하게 만들 정도의 크고 경쾌한 소리였다. 점배기는 납작하게 눌린 파리를 이마에 또 하나의 점처럼 붙이고 환한 얼굴로 외쳤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우리는 모두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고, 그래서 각자 과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쌍둥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거나하며 그런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척 했다. 이미 생각 했었지만 무서워서 입 밖에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느니 그편이 나았다.
그 날 밤, 자는 척 하다가 조용히 빠져나와 마을 어귀에 집결한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비장했다. 집에 유서를 남기고 왔다는 녀석도 있었다.
각자 손에는 무기들이 들려있었다. 낫, 부지깽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나무칼, 자기 머리통만한 돌, 다듬이질 할 때 쓰는 방망이, 싸리 빗자루, 쇠똥 푸는 삽에, 닭을 들고 온 녀석도 있었다. 아마도 도깨비가 수탉 우는 소리를 무서워 한다는 말을 따른 듯했다.
우리의 얼굴만큼이나 창백한 보름달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서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모두 무기를 들고 강렬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마른 장작개비를 든 으렁이가 도착했다. 어눌한 말투나 행동, 항상 코 밑을 흐르는 콧물, 참꽃과 개꽃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등으로 은근히 무시 받는 녀석이었다. 으렁이가 왔다면 더 이상 올 녀석은 없다는 뜻이기에 더 이상 우물쭈물 거릴 수 없었다. 우리는 걷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럴 기분이 아닌지라 입을 연 아이는 하나도 없었지만, 거친 숨소리와 우석거리는 산의 소리, 벌레 울음소리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녀석의 비명소리 같은 것 때문에 주위는 별로 고요하지 않았다. 전진 속도는 만월이 무색 할 만큼 느렸다. 하지만 결국 저쪽에서 괴물의 집이 나타났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푸줏간 집 막내아들같이 이미 괴물을 목격했던 아이들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때문에 미처 그러지 못 할뿐,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쉼 없이 옆구리를 찔러대는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쌍둥이 형이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그를 선두로 한 밀집 대형으로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겨냥하며 신중히 나아갔다. 거친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나뭇잎 부딪는 소리. 땀이 뺨을 타고 미끄러져 뚝 떨어졌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그 집 앞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다음은 오늘 작전의 가장 큰 고비라 생각했던 호미 찾기였다. 그러나 호미는 괴물의 집 입구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 놓여있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손닿을 듯한 거리였지만, 우리는 밀집 대형을 풀지도 못하고 누가 호미를 가져올 것인가 소리 없이 다퉜다.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빽빽이 모여서서 서로의 몸을 밀치던 중, 급기야 기운이 약한 으렁이가 대형에서 튕겨나가 버렸다. 으렁이는 한참이나 굴러가며 비명을 질렀다. 경악한 우리는 입을 쩍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굴러가는 소리나 비명소리나 사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귀 바로 옆에서 꽹과리를 두들겨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간 으렁이가 멈추고 주변은 고요해졌다. 아이들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벌레 울음소리도 뚝 끊겼다. 나무들조차 특유의 우석거리는 소음을 내지 않았다. 으렁이도 고꾸라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절한 건지 자신이 저지른 일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우리처럼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리길 바라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소박한 바람을 조용하지만 확고하게 깨는 소리가 있었다. 턱, 턱, 턱. 차라리 우리의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이길. 거적문이 젖혀진 것은 그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속도는 거짓말처럼 느렸다. 어쩌면 움직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분명이 젖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이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의 몇 배나 될 정도로 길었을 뿐이었다.
경악에 찬 얼굴, 튀어나올 듯한 눈, 동글동글하게 소름이 돋은 팔, 타닷타닷 소리를 내며 곤두서는 온몸의 뼈,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 아픈 뒷목,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곤두선 머리털. 누군가는 문이 열리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몸을 돌렸다. 누군가는 같은 속도로 팔을 휘저었다. 누군가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렸다. 비명을 지를 듯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 입에서 동그랗게 튀어나온 맑은 침이 반짝,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영원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 거적문은 완전히 열렸다. 그 뒤로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순간, 우리는 귀청을 찢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제 속도로 돌아왔다.
우리는 서로의 비명에 놀라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잠이 깬 새들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검은 그림자, 그러니까 괴물도 놀랐는지 잠깐 움찔했다. 그 틈을 타서 우리는 무기고 뭐고 다 내던지고 도망쳤다.
올라갔던 속도를 생각하면 내려오는 속도는 가공할 정도였다. 길 주변의 수풀은 알아볼 수 없는 녹색의 흐름으로 보일 뿐이었고, 별도 달도 우리의 등 뒤로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 다리에 걸려 데굴데굴 굴러간 녀석도 벌떡 일어나 냅다 달렸다. 도중에 몇몇 밤살이 동물들과도 마주친 것 같지만,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몰려 내려오는 우리들의 기세에 움찔하여 수풀 속으로 숨어버렸다. 너무 지친 나머지 비명 소리도 잦아들 때 쯤 우리는 산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낙오자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렁이였다. 아무도 그를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혹시 괴물에게 잡아먹혔나 싶었지만 차마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으렁이를 챙기지 못했다는 책임을 떠넘기며 초조하게 서성거렸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이대로 집에 돌아가자는 아이들과 다시 가보자는 아이들로 나뉘어 격렬하게 논쟁했다.
집에 돌아가서 날이 밝으면 으렁이를 찾아보자는 절충안이 확정될 때쯤이었다. 귀 밝은 아이 하나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괴물이다! 점배기의 나직하고도 급박한 외침에 우리는 모두 굳어버렸다. 우리들의 머릿속에선 비쩍 마른 으렁이 하나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괴물이 다른 먹잇감, 그러니까 우리들을 쫒아온 것이라는 끔찍한 상상이 영글었다. 터벅터벅. 맥 빠진 걸음걸이는 확신을 주었다. 좀 배가 찬다 싶었더니 더 이상 남은 게 없다면, 누구라도 저렇게 힘이 빠지지 않겠는가?
용케 무기를 내버리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등을 떠밀려 우리들의 앞으로 나섰다. 떨리는 손을 볼 때 왜 진작 이런 걸 내던지지 않았는지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괴물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이윽고 나무 그늘에 가려져 검게만 보이던 괴물이 달빛 아래에 들어서기 직전, 우리는 이미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꼬꼬댁.
어처구니없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괴물의 포효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멈춰 섰다. 달음박질이 빠른 아이들은 이미 수십 걸음을 앞서나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자 우리의 기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왜소한 덩치의 괴물이 보였다. 무언가 짐을 잔뜩 들고 있었다. 우리가 괴물의 집 앞에서 내던진 무기들이었다. 그 손목에는 긴 새끼줄이 묶여 있었고, 반대편 끝은 역시 우리의 무기 중 하나였던 수탉의 다리에 묶여있었다. 푸득, 푸드득. 달빛 고요한 밤에 닭 홰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느덧 그는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괴물에 대한 적의의 상징이자 정의의 실현을 위한 도구였건만, 부끄럽게도 우리가 내던져 버린 모든 무기들을 회수해 한 몸에 짊어진 그는 으렁이였다.
으렁이는 단번에 우리의 영웅이 되었다. 모두 도망가 혼자 남은 상황에서 그는 괴물과 맞서 우리의 무기들은 물론 호미까지 되찾아 온 것이다.
쌍둥이 형제의 푸르스름한 조약돌과 사금파리와 새알 껍질과 도토리와 뱀 허물과 구미호 꼬리털은 물론, 우리들의 소중한 잡동사니와 무한한 존경심까지 몽땅 으렁이의 차지가 되었다. 자신이 무기로 쓰던 닭을 바친 녀석도 있었는데, 다음 날 퉁퉁 부은 종아리로 훌쩍이며 다시 찾아갔다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으렁이를 떠받들었다. 우리는 극구 사양하는 으렁이를 커다란 바위 위에 앉게 했다. 워낙 볼품없는 채풍이긴 했으나 그렇게 올려다보니 한결 나았다. 한 아이가 과도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괴물의 모습은 어땠어? 모두가 으렁이에게 각자 다른 내용의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궁금해 했던 것이기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으렁이는 피로해서 그런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재차 묻자 떠듬떠듬 괴물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소문과 별 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흉측했다.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기억될 전설의 주인공이 된 으렁이는, 그러나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쉼 없는 재잘거림에 입술 끝을 약간 들어 올렸다가 곧 고개를 푹 숙이곤 했다. 아마도 괴물과의 일전으로 생긴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입은 상처라고는 아마도 넘어졌을 때 생겼을 피가 흐르는 무릎 정도였지만, 홀로 괴물과 고독한 일전을 치르면서 느꼈을 공포나 긴장감이 그의 정신에 주었을 타격을 우리가 어찌 짐작 할 수 있을까.
문득 으렁이가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해넘이재 부근을 바라보았다. 마침 달을 가리던 구름이 갈라져 바위 위에 걸터앉은 그에게 은은한 빛을 뿌렸다. 서로 한참을 재잘거리던 우리는 잠시 수다를 멈추고 그 멋진 모습에 감탄했다. 그리고 경외감과 황홀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전설이 될 만한 위대한 일전을 치르고 흉악한 괴물을 물리친 영웅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