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애로사항 중 3종 세트를 꼽자면 길치, 멀미, 알코올이다.
지니에게 소원으로 요청하려는 다리 불편함은 고질적인 증세인지라 잘 데리고 살아야 하겠고, 난독증은 애교 수준이어서 큰 불편은 없다. 그런데 이 3종 세트는 평소 드러나지 않다가 조건이 성립하면 확실하게 등장해 일상이나 업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셋 중에서 가장 빈번하고 분명하게 약점이 되는 건 술이다.
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고 싶었다. 첫째, 내가 추구하는 대범하고 활달한 인물의 이미지와 부합한다. 둘째, 와인처럼 심도 있는 술의 세계를 탐미한다. 세째,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유리하다. 하지만 난 술에 취약한 유전자로 태어났다. 과일주를 담던 엄마는 숙성 상태 본다고 과일 한입 베어 물었다가 종일을 누워 있어야 했다. 술 못 마시는 아버지는 안 풀리는 인생을 술로 달래려 했지만 몸이 받아 주지 않아 밤마다 토했다. 언니 남동생들 모두 술을 못 마셔 어쩌다 한잔 걸치면 온 몸에 알레르기성 붉은 반점이 올라 온다.
술은 훈련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입학한 대학은 그 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선택이었다. 막걸리 사발식으로 신입생을 환영했고 매일매일 술자리가 있었다. 인생 첫 술에 내 몸은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속이 어느 정도로 울렁거릴 때 화장실로 가야 실수하지 않는지 타이밍을 알게 해 준 기간이다.
나의 첫번째 직장은 당시 폭탄주로 대변되는 신문사였다. 조금 과장해서 365일중 100일 은 토하며 살았던 것 같다. 술은 정신력의 문제라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술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술자리에서 호기로운 척 버티다 지하철 역 벤치에 널브러져 신음하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두번째 직장은 그 보다는 덜했지만 술 잘 마시는 것이 경쟁력 중 하나로 대우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돌이켜 보면 시절이 술을 권했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술을 접했으면 어땠을까,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술은 그냥 나랑 안 맞는 거였다. 그럼에도 난 사회의 목소리에 열심히 부응하려 했고, 할 수 있는 척 보이려 했고, 술의 세계를 아는 척 하려 했다.
애쓴 덕분에 사회에서 관계에서 경험에서 어느 정도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몸의 고됨이 쌓였다. 잦은 구토는 목소리에 흔적을 남겼다. 사교를 위한 가벼운 한 잔마저 나에게는 그대로 숙취가 되었다. 화장도 못 지운 채 거실 바닥에 뻗어 거친 밤을 보냈고 다음 날 내 몸과 머리는 그대로 정지. 그렇게 부단히 보냈다.
술 마시지 못한다고 술 마시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싫은 일을 안하고 살 수 없다지만 난 사실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양 살아 왔다.
나름 최선을 다한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그만하자. 못하는 건 스스로 인정하자. 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다. 양해를 구하고 휩쓸려 가지 말고 내 양을 지켜 가자. 술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으로 두자. 나는 이제부터 술을 마시지 않고 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