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와세다 대학 부근 쿠사마 야요이 뮤지엄. 입구에 걸려 있는 사진 속 그녀와 찰칵. 쿠사마가 내 뒤에 함께 있는 것처럼 나왔다. 둘러 보다 그녀의 화집을 펼친다. 약력이 있다. 나이가 꽤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충격적이다. 1929년생. 그럼 몇인가. 나이에 인심 좋은 한국 나이로 따지면 91살. 그녀는 현역이다. 가장 트렌디한 패션계에서 그녀의 패턴을 콜라보하는 핫한 작가다.
그러고 보니 아티스트, 특히 미술 쪽 아티스트들은 살아만 있으면 너무도 젊은 현대작가다. 예술의 히스토리가 워낙 장대해서인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들조차 현대작가 군단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60대 70대 80대를 넘어가도 젊은 목소리, 혁신의 목소리로 존중된다. 실제로 그들의 인터뷰나 글을 읽다 보면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과 마인드가 느껴진다. 어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앞서가는 이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런데 같은 인생을 사는 데도 직업군별로 젊음에 대한 기준은 매우 다르다. 예술가들이 살아 있기만 하면 가장 어린 축에 드는 반면 운동선수들은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30대부터 노장이 되곤 한다. 10대부터 스타가 나오는 종목들은 20대 중반 이전에 전성기를 찍는다. 인생의 아주 오랜 기간을 이미 전직000으로 살아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도 당연히 작아진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른바 직장인들은 그 중간쯤 되지 싶다. 상하직급체계에 맞춰 차근차근 올라가는 구간을 거치면서 직급과 목소리의 크기는 정확하게 비례한다. 그렇다고 직급이 높은 이들의 목소리가 젊다고 인정받는 건 아니다. 힘에 대한 존중이요 어른에 대한 존중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인가. 나이는 연륜인가. 생년월일로 단순계산 되는 나이는 진짜 내 나이가 아니다. 신체나이 뇌나이 정신나이 마인드나이 경험나이 환경나이...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진짜 나이가 정해진다.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따라 10년 후 나의 진짜 나이는 정해 질 것이다. 어떤 나이가 되어 있건 아름다운 나이였으면 한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멋진 생각과 모습이었으면 한다. 나다운 나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