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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Jan 13. 2023

2023년 1월

가벼운 어른이 되기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시댁 식구와 여행을 간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

우리집 가족 넷.


이번 여행지는 대천

대학이 공주대 였던지라

대천은 과 모임,

대학교 시절 남자친구와 자주 여행왔던 곳이기도 하다.


칠갑산 고개를 지나는데

칠갑산 노래가 떠올라

차에서 노래를 틀었다.

"칠갑산 지나니 이노래를 안들을수 없지~~"  하며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재혼하기 전 아빠가

그 시골집에서 두 딸아이를 키우며

줄곧 부르던 노래였다.


"칠갑산 산 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가슴 속을 태웠소"


깡마른 몸으로

고음부분은 있는 힘껏 목청높여부르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잘 닦아놓은 도로를 달리며

그리 굽이치지도 않는 이 산을

홀어머니 두고 시집간 누나의 마음도 되어보며

울컥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 생각하는데


딸 아이가 묻는다.

"엄마, 근데 엄마는 식당가도 먹지도 못하면서

왜그렇게 욕심내?"


ㅋㅋㅋㅋㅋㄱㅋㅋㅋ

내가 뭐 그렇다고 먹방유튜버급으로

대식가도 아니지만

항상 먹는것에 대한 집착은 유별났던것  같네.


가만 생각해본다.

언제부터 였을까..


새엄마랑 살던 시절,

나는 먹을 것이 없었다.


먹고 싶은게 있다고 이야기할수도 없었다.


용돈도 없었다.

급식비 받은것을 온전히 한달 끊지도 않고

라면 사먹으며 남은 돈으로 입고싶은 티셔츠 한장  사입었다.


대학을 가면 달라질까 싶어 기대했지만

월 용돈 10만원.

휴대폰요금 6만5천원을 내고나면

3만 5천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해서


나는 새내기중

선배들에게 가장 밥을 많이 얻어먹는

성격좋은 후배로

아이러니하게 각광받게 되었다.



"엄마가., 못먹고 컸어.하하하.우습지."

애써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모든 상황을 아는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난 화가나. 당신을 그냥 버려둔거잖아."

그런가,

그렇네.


대학 시절 원룸 이사도

남친이 렌트카 빌려서 해주고

내가 몸이 많이 아파서 입원했을때도

수발 들어준건

그시절 그 친구였으니,



뭐 이제와 따질 수도없고

할 도리 안하면

할머니와 고모들이 속상해하며

내게 연락해댈테니

어쩔도리없이 할 도리는 하지만

여전히 부모에대한 감정은

해결되지 않았나보다.

이렇게 불편한걸 보니.





대천 바닷가를 거닌다.

시어머님은 시아버님 팔짱을 끼고 걷고

남편은 사람좋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뒤돌아 걷는다.


아직 좋은 짝을 만나지 못한

착한 시누는 항상 우리 두 아이 케어를 맡으며

새우깡을 던지며

우리집 두 천사와

함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항상 마음이 불편한 것들이 가득차

시댁에서 전전긍긍으로 나를 챙긴다.


우습지.

다른데서 원인인데

시댁이 동동거린다.



시댁어른들의 그 큰 존재감이

드넓은 바다와 맞닿아

와닿는다.



진짜 어른이란 저런  모습일까,



이른저녁을 먹으려고

동네 가장 핫  한 삼합집을 시누가 알아왔다.


처음 먹는

고급진 요리에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시아버지께서 부르신다.



"애미야, 항상 애썼다이. 그리고 고맙다."



나는 시댁에서 항상

병약한 이미지에,

우울증 환자임을 고백한 후 더 돌봄을 받는 입장이어서

두어른보다  더 대접받는 자리였는데

항상 나더러 고맙다고 하시는 시아버지.


말 많은 시어머니도 몇마디 더 거드시고

시누도 거든다.


이런 칭찬받는것도 어색해서

머쓱해 맥주만 홀짝 받아먹으며

눈웃음 지어 드렸더니

그 광경을 보는 딸아이가 씨익 웃어준다.



며칠  전

친구가 건넨 이야기가 생각난다,


"야, 나는 어릴때는

진지하고 어두운 어른이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까

조금씩 비우면서 가벼워지는 어른이 더멋있게 보이드라."



비우면서 가벼워지는 어른들...


사업 실패했을때

죽으려고 설악산 여인숙에 들어가

수면제 잔뜩 입에 넣고

맥주 소주를 들이붓고 잠들었는데

모처럼 푹자고 일어났다는

시아버지의 담담한 고백이 생각난다.


나로써는 스케일이 너무 커 감당하지도 못할일들을

두어른은 참 많이 겪으셨다.


그럼에도

두분은 같이 두 손주와 썰매를 같이타며

아이처럼 순수하시며

가볍게 세상을 바라보신다.



나는?

항상 피곤하고 살아온 길들이 버겁다며

축 쳐지고 우울한 모습이 많았다.



리조트 지하에 오락실에서

어김없이 두 아이들과 남편이 게임삼매경이다.



꺅소리를 질러대며

그 순간을 즐기고

뒤늦게 합류한 시누도 신이나 조카들과 흥이 넘친다.



항상 그러했듯

나는 뒤켠에서 진지하게 바라보다

흠칫 놀란다.


뭐가 그리 진지해,


이젠 가벼워져도 되잖아.

이젠 조금 누려도 되.


잘 해내고싶은 육아도

어느정도 해 냈고


완벽하고 싶은일도

어느정도 해 냈으면 그걸로 족하니까.



만 나이로 모두 통일 한다는 23년,

왠지 모르게 1년 공짜로 더 사는 느낌이다.


거저 주어진 삶 같은

두번째 38살,


불편한 것은 불편한대로 그저 묻어두고

가벼워지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바닷가 위로 내리는 비도 아름답고

빗소리도 아름다우며

거실에서 우리 두 아이들 발 마사지해주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나누시는

두 어른의 모습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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