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그램> 수신지 작가 지음.
인간의 몸은 복잡하고 신비롭다. 더욱 신비한 점은 이 복잡함을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숨쉬기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호흡기는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 폐가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공기는 폐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폐 안의 폐포에서는 확산 현상에 의해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교환되고, 산소는 흡수되어 몸 곳곳으로 운반된다. 세포단위, 분자 단위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진다. 기계로 따진다면 우리의 몸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하다. 나는 가끔씩 이 복잡한 구조가 나도 모르는 사이 문제없이 계속해서 작동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쩌면 몸속에 아주 유능한 집사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몸 구석구석을 돌보는 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비행기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비행기에 사고가 나는 이유는 생각보다 작은 결함이었다. 나사 같은 작은 부품의 손상, 사람의 순간 주의 부족, 얇은 회로의 합선 등 미세하고 작은 결함이나 실수로 비행기는 하늘 위에서 균형을 잃어버리고, 많은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다. 나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복잡한 시스템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도, 작은 오류로 지금 날고 있는 높은 하늘에서 곤두박질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겁이 몰려온 기억이 있다.
인간의 몸은 비행기보다 더 작지만 그에 못지않게 복잡한 것 같다. 인간의 몸은 나사나 볼트 같은 기계부품은 아니지만 단백질과 효소 같은 유기물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작은 부분들이 제각기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사람의 몸은 질병을 얻는다. 작은 부품의 결함으로 비행기가 추락하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듯, 인간의 몸 또한 작은 부분의 이상으로 큰 병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병은 당사자와 그 주위 사람에게서 목숨이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빼앗아가곤 한다.
수신지 작가의 <3그램>에서 말하길, 우리 몸속에 있는 난소는 겨우 3그램이라고 한다. 이 3그램의 난소에 암이 생기면 수십 킬로그램의 우리 몸은 금세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수십 킬로그램의 몸 중 3그램. 이 작은 부분의 이상으로 내 몸과 마음은 수십 번씩 지옥을 다녀오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어둠을 드리운다. 3그램의 이상으로 영향을 주는 건 내 몸 수십 킬로그램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포함한 수백, 수천 킬로그램의 마음 들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그마한 장기에 생긴 질병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은 좀 억울하기도 하다.
사실 병에 걸리게 된 이유라도 알면 조금 덜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배가 신기하리만큼 불러왔고, 처음 간 병원에서는 “배에 똥이 차서 그렇다”라고 했다. 하지만 뭔가 불안한 마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난소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을 뿐이다. 왜 이 작은 기관에 병이 생겼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난소암이라는 결과만이 나에게 닥쳤을 뿐이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단단한 벽으로 느껴지곤 한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했고, 내일은 오늘과 비슷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그램>을 통해 그 일상은 생각보다 작은 일들로 무너지고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의 몸과 마음에 생긴 아픔이 3그램 밖에 되지 않는 난소에 생긴 암세포이듯, 우리의 공고해 보이는 일상은 생각보다 작은 틈과 균열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에게 아무 언질도 없이, 이유도 없이 나에게 닥친다. 마치 아무 낌새도 없이 어느새 달라붙은 작가의 암처럼 말이다.
내일 나에게 그런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세상은 엄청난 우연과 우연이 가득한 곳이니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에게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조금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작가는 기다리던 퇴원 날 병원을 처음 들어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병원 밖으로 나가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가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과거의 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밖에는 봄이 온다. 사회와 정부의 복지정책 같은 거대담론은 그 시간을 직접 통과하는 이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선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봄이 온다는 확신, 그리고 항암치료의 우울함을 함께 견디어줄 가족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진부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정답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