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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샘 Dec 25. 2023

[연재] 2화 눈에 띄는 아이

행복이 이야기

3월 2일 첫날이 되었다.

아이들은 다소 긴장된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추었다.

동시에 아이들은 서로를 관찰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섰다.

나도 관찰하는 마음과 함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 잘 웃는 아이, 목소리가 큰 아이, 붙임성있는 아이, 유독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은 아이, 그리고 눈 접촉이 잘 되는 아이, 잘 접촉하지 않는 아이 등등...


그렇게 며칠을 두고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니 예상대로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뭐랄까 사회화가 너무 안 됐다고 해야 할까. 사회적 관계 맺기가 유독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관계 맺기를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그 아이에 대해 이미 아는 듯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질서나 규율도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규율 없이 교실을 드나들었고,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을 느낄만한 상황에도 너무 태연하게 행동했다. 게다가 그 행동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4학년 정도에게 기대할 수 있는 사회화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조금도 다듬어지지 않은, 아니 장인이 아예 손을 대지 않은 원재료가 잘못 시장에 나와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잘못된 상황에 대해 가르쳐주기 위해 잠깐 나오라고 하면 기본적인 대답이 "왜요?"였다. 또, 너무 아무렇지 않게 뻔한 거짓말을 했다.

"아까 강당 갈 때, 선생님이 손소독제 바르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왜 그 옆문으로 들어갔어?"

"선생님 못 봤는데요?"

"못 볼 수가 없는데? 줄 서서 손소독제 바르고 들어가고 있는데 일부러 옆에 있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잖아."

"아닌데요? 진짜 못 봤어요."

너무 뻔한 거짓말로 시작해서 말도 안 되는 우기기를 선보였다. 거짓말을 하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선생님에 대한 예의도 없는데, 급식실 여사님들에게는 더더욱 무례했다. 다른 아이들 배식에는 문제가 안 되는 것이 그 아이에게는 다 문제 되었다. 식판에 국물이 약간 옆으로 튀어 묻으면 식판을 바꿔줘야 했고, 안 받겠다는 김치를 실수로 주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은 기본, 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큰 소리로 난동을 피웠다. 식판을 바꾸어준다고 해도 듣지 않고 마음에 뭐가 해결이 안 되었는지 "내가 김치 안 받는다고 했는데"하는 소리만 짜증 섞인 말로 반복했다. 특별배식으로 과일이 나오는 날은 과일 모양을 하나하나 고르느라 지체되었고, 특별배식은 자신은 더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 자신은 못 받았는데, 추가 배식으로 두 개 받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자신도 두 개를 받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없다고 끝났다고 해도 제지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좋은 말로 이야기해도 콧잔등을 찌푸리며 기분나쁜 표정으로 대응했다. 아직 철이 없고 어려서라고 하기에 아이의 행동은 그 수준을 넘어서 보였다.


예전엔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첫 달 한 달은 절대 웃지 않고 무심하게 아이들을 대한 적이 있다. 그럼 학급의 질서가 잡히고 학기 초의 긴장감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학부모님의 학교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당시에 가능했던 방식이다. 지금같이 민원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는 하기 어렵다는 것이 씁쓸하다. 이 방법을 쓰시는 선생님들 역시 아이들과 학급에 애정이 있는 경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종의 학급살이 기획인 셈이다.


이 방법이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 쓰지 않게 되었다. 남의 것을 흉내 내려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 두려웠고, 웃지 않고 무섭게 보내는 한 달이 너무 힘들었다. 웃지 못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웃길 때 웃고,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에 마음껏 웃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식대로 하기로 했다. 내가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대했을 때, 결국 아이들은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고, 그것은 곧 나의 믿음이 되었다. 또 이 믿음은 경험치가 쌓이면서 확신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러한 나의 확신에 물음표를 던지듯 나의 확신과 믿음에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 저는 어때요? 그 믿음이 나한테도 통하나요? 나는 어때요? 너무 잘해주면 안 될 것 같지 않나요? 저한테도 그 확신이 드시나요? ]


하고 되묻는 것 같았다.


그래! 진짜가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를 향해 드는 나의 감정은 두려움이나 화가 아니었다. 궁금함이었다. 이 아이에 대한 궁금함이 올라왔다. 마음이 궁금했고, 지난 시간들이 궁금했다. 나는 눈에 띄는 한 아이를 그렇게 호기심의 마음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내 안에 두려움을 걷어내고 보니 그 안에 아이를 향한 애정 어린 궁금함과 호기심이 있었고 그 호기심은 사랑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의 바탕이 결국 사랑이라면 어떤 것을 시도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 설사 무섭게 보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사랑을 베이스로 한 단호함은 필요했다.


그리고 내게는 한 가지 믿음이 더 있었다. 하나님 자녀에게 온 문제는 결코 문제가 아니고 축복의 발판이라는 믿음, 문제 속에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숨어있다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부르셨다는 믿음이다.


이제 진짜 이 아이를 만나 보자.


->3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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