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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15. 2022

술을 끊어보기로 했다

금주 1일 차


2022.8.14. 금주 1일 차.



나는 술을 좋아한다.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소주 없이는 삼겹살을 못 먹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얼마나 애주가냐면 올해 들어 술을 안 마신 날이 딱 하루밖에 없다. 그것도 정말 큰 마음먹고 ‘하루만 마시지 말아 보자’ 하고 겨우 참았다. 그 하루를 빼고는 전부 술을 마셨다. 술 약속이 있었거나 했던 건 아니고 대부분 집에서, 평균적으로 소주는 4잔, 맥주는 한 캔 정도의 양을 매일 마셨다. 남편은 ‘내가 이런 술꾼이랑 결혼했다니’ 하는 눈빛으로 부랑자 보듯 나를 보다가도,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내가 마실 술을 챙겨 카트에 담아주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내가 ‘이번엔’ ‘진짜’ ‘제대로’ 술을 끊어보겠다고 결심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성공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술을 끊었다’는  요즘 느꼈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동영상을 요 근래 자주 보고 있는데(여기서 성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번 사람이다), 말술처럼 생긴 사람들이 의외로 ‘술을 끊었다’고 말하는 걸 심심치 않게 봤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하기 시작한 시점과 술을 끊은 시기가 묘하게 겹쳤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이 다 술을 안 마시는 것도 아니고 술을 끊은 게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봤다’라는 벽돌 하나의 역할은 충분히 했으리라 생각된다. 성공이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해본’ 벽돌을 많이 모아야 될 테니까.


두 번째 이유는 며칠 전에 과음하는 바람에 이틀 동안 생활이 무너졌던 일 때문이다. 모처럼 마음이 맞는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술자리가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술이 술술 넘어가다 보니 그만 주량을 넘겨서 술을 마시고 말았다. 나를 집에 보내느라 고생한 동료들을 생각하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미안한 마음도 크지만 자기혐오에 결정타를 날린 건 술을 마신 날과 그다음 날,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술을 마신 12일과 그 다음날, 지키지 못한 루틴. 초록불은 루틴의 60% 이상, 노란불은 20% 이상 달성한 날이다. 빨간불은 20%도 달성하지 못한 날. (어플 ‘마이루틴’)



나에게는 항상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여행을 마음껏 다닌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된다거나, 그런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우선 내가 가진 게 많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리고 그러려면 안 좋은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에너지가 안 좋은 습관 때문에 흩어져버리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를 저어도 모자랄 판에, 술을 마시면서 노를 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실 별로 자신이 없다. 20년 동안 술을 그렇게 좋아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내 인생에서 술이 사라진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모처럼 결심한 게 흐지부지 될까 봐, 이렇게 글을 남긴다. 공공연하게 글을 써놓았으니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을 한 번은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서 작은 목표 3가지도 정해 놓았다. 첫 번째남편이랑 하고 있는 다이어트 내기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두 번째준비 중인 필기시험이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것, 세 번째는 올해 크리스마스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잘 될까. 나도 모르겠다.


금주 1일 차. 술을 마시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전전날의 숙취가 남아있어 완전히 내 의지로 참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과거형으로 쓰고 싶다. ‘나는 술을 좋아했다’로.


내가 좋아하는 술들아 안녕~~ 수제 맥주야 안녕~ 하이볼아 안녕~ 블랙러시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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